첫연재니깐 간단하게 맛보기글부터 들어가겠습니다..


망자의 한이라고 해야할까?

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세계경영이란 슬로건하에 공격적 M&A와 공격적 외채도입경영으로 특히 동구권과 개발도상국에서 매일 그기세를 높여가던 대우그룹이란 회사가 있었습니다.

                                   ▲ 99년말 대우는 20개가 넘는 자회사(하청업체, 부서제외)를
                                       거느린 명실상부 재계1위 회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우는
                                       안내판에 써있는 회사들중 '주식회사 대우' (옛 대우실업)를
                                       제외한 모든 회사는 M&A 승리의 전리품이었습니다.
                                       <98년, 대우빌딩입구에 붙어있던 안내판>


리고 대우자동차가 있었습니다.

▲ 93년, 대우자동차는 이렇다 할 모델없는 업계꼴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아시아, 쌍용자동차 제외)
현대가 80년대 자체기술개발에 매진할동안 대우는 그냥 오펠에서 레코드하고 홀덴에서 코모도어 들여와서 로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팔았으니 이런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우가 당시 꺼내든 카드였던 세계경영의 일환으로 대우자동차에도 김우중의 손이 미치기 시작합니다.
<93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홍보전시관내>

"몇몇 사람들말에 의하면 김우중회장은 세계경영카드를 꺼내기전까지만하도 대우차계열에는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르망이 히트쳐도 로얄이 히트쳐도 점점 몰락해가던 시기에도 별관심이 없었고 그 이유로 92년까지 GM과의 합작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귀찮아서?) 그리고 가끔 GM의 대우차 매각제안도 관심있게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93년, 세계경영카드를 꺼내들자 태도가 갑자기 180도 변해서 애지중지하기 시작해서 결국 부도전까지도 매각은 없다 입장을 고수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대우그룹부도처리후에 김우중화장은 대우차는 반드시 자신이 경영할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참.. 알수없는 사람...;;;)"

 

                                            ▲ 헬기에서 내리는 김우중회장 <97년, 본사>

            ▲ 이제 우쭈쭈 내쒸끼 대우차 사랑이 시작됩니다.
               <96년, 누비라 최종개발차(출시전 제품 최종품평회쯤으로 보시길...)를 보는 김우중회장>
 

             ▲ 결국 내새끼 사랑은 FSO(폴란드국영자동차합영법인)라는 거대회사를 인수하게 됩니다.
                그것도 형님이었던 GM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서 말입니다.
                김우중은 FSO를 인수할때 파격적 제안을 걸었습니다. 먼저 2만여명의 모든 노동자들을 5년
                동안 정규직으로 유지시켜주고 보수도 100%올리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단, 노조활동은 5년간
                자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악속은 지켜졌고 폴란드뿐만 아니라 모든 동구권에서 대우는
                최고의 회사라는 명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김우중식 격적 세계경영을 본
                영국의 한 유력일간지는 몽고가 말을타고와 유럽을 정복했듯이 김우중이 대우차를 타고 유럽에
                상륙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대서특필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막역한 사이었던 
                우즈벡 대통령은 그를 일컬어 김기츠칸이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칭기스칸+김우중)
                <97년, 폴란드 FSO-DAEWOO에서 김우중회장과 FSO-DAEWOO공장장과 함께 시찰중인 모습>

            ▲ 98년, 베네수얼라 대우자동차 대리점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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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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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리스 2011.04.21 0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들이 있네요.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2. tibul 2011.07.25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아쉬운 기업이자 세계의그룹,최초로 경제학을 전공한 우리경제계에 큰 발자욱을 남긴 대우,부도를 낸 이유를 무리한 차입으로 상환능력을 꼽았지만 그럼 H,S그룹을 포함한 다른 기업의 상황은 어떻고?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세계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대한 평가가 어떻게 되겠냐는 생각해봤나? 대학도 못나오고 상황에 따라 말만해대던 정권의 경제부처에서 결정했겠지만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한다. 일찌기 우리경제계에서 온세계를 시장으로 실제 그렇게 발로뛴 기업인이 있었나?회장한사람만 책임지우면 안되었나?지금도 월남등 곳곳에 대우의 혈맥이 이어지고 있다.정부가 쥐고있는 은행의 여신.무지 무능한 정권에 의해 자금을 융자받지 못하고 아쉽게 그룹이 해제되었는데 당시 경제장관과 지옥에 가있는 쩔둑바리에게 묻고싶다.그그룹해체가 올바른 판단이었는지? 아쉽다.

    • 노리스 2011.08.18 1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대우를 꼭 그렇게 죽여야 했는지..대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대우의 기술변천사가 로얄시리즈에서 모두 드러난다. (그속에서 서서히 망해가던 대우의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
초기 (1972년~1980년)
(회사변천 : GM코리아->새한->대우자동차, 차종 : 레코드시리즈->로얄시리즈, 베이스 : GM->OPEL)

이 모델이 GM코리아에서 새한자동차로 바뀌던 시절 나온 고급모델 레코드입니다.
이 모델이 로얄시리즈의 시초로 따질 수 있습니다. (시초는 시초일뿐 같은 모델로 취급하진 않겠습니다. 제목에는 78년으로 써놓고 부제엔 72년으로 써논 이유입니다.)
오펠의 레코드를 베이스로 하였습니다.
모약부터 앰블럼까지 어느하나 안빠뜨리고 들여온지라 우리나라에는 절대 맞지 않은 차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길과 궁합이 맞지 않는 낮은 저상고와 오일쇼크로 힘들던 시절에 GM특유의 낮은연비와 요란하신 품행으로 욕좀 많이드셨습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말아 드셨습니다.

음.. 이쁜디 말여...

 여하튼 레코드로 한번 말아드신 새한은 78년 현대그라나다가 출격후 대박을 치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오펠이 병주고 약주고를 실천하시련지 당시 서독 최신인기모델인 세나토와 몬자, 레코드를 만들며 우려먹기의 황제임을 과시하던 C-Car Project 베이스를 새한모더스님께 하사하려 합니다.

이에 새힌은 응용따윈 건너뛰고 그중 가장 울궈 먹기 좋아 보이는 레코드 베이스를 그대로 모셔와 조립합니다.
그리고 판매합니다.
음... 뭔가 빠졌군요...
네.. 마케팅이라는 상술을 8년만에 깨달은 다윈진화론에 입각한 새한은 진화를 시작합니다.

그래! 아거야!! 좀 있어보이는 단어를 사용하자구...!
'에어로 다이나믹스.. 어쩌구저쩌구..'
이제 좀 팔립니다... 판매를 꽤 짭짤이한 새한은 대우와 합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로얄이란 이름이 하사됩니다!!
됐어! 성공했어!!
엄마 아빠 김우중씨 나 드디어 고급차 만들었어!!!

국내 승용차 역사중 최악으로 기록됬을 미친존재감 로얄디젤...은 다음글에서... ㅋㅋㅋ

다음글에서 게속....

사진출처 : 소장, 구글
지식출처 : 내머리속, 위키백과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불펌하지 맙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댓글 써줍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광고 눌러줍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저작권 엄수 합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홍보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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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리스 2011.04.15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들이 많네요~다음 편도 기대 하겠습니다.

  2. マーチ 2014.10.20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기 레코드로얄은 말아먹기는커녕 1973년경에 경쟁모델이던 현대 포드 20M이 조기에 단종되는 바람에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사실상 시장 독점 효과를 누리며 높으신 분들의 애마로 어느정도 팔렸습니다. 포드 20M보다 차체는 작았지만 4기통 엔진이라 연비는 포드 20M 보다 좋았습니다. 게다가 코드명도 틀렸는데 오펠 레코드 계열은 C-Car가 아닌 V-Car 입니다.
    그리고 뉴 레코드 로얄은 오히려 그라나다 보다 2달 먼저 시판되었고, 뉴 레코드 로얄이 1978년 8월, 그라나다가 1978년 10월에 나왔습니다. 그라나다도 나온지 얼마 안되어서 78~79년 2차 오일쇼크 때문에 당시 장관급 관료들의 관용차들을 4기통 엔진으로 제한하는 바람에 6기통 엔진인 그라나다는 제대로 물먹어버리고, 4기통 엔진이던 새한(대우)의 로얄이 반사이익을 얻던 시절입니다.

대우 맵시나는 망한 모델인 제미니를 성공적으로 재생시킨 한국형 월드카였다.

 맵시나 광고 (1984년)

주저리주저리 막 썼어도 잘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댓글도 많이좀 달아주세요ㅠㅠ... (기왕이면 광고클릭도;;)


이시기에 나온 대부분의 대우차는 오펠에서 베이스를 가져와 엔진크기를 줄여서 조립한 차이다. 엔진크기를 줄인 이유는 우리나라 세제에 맞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로얄프린스에 1500cc엔진이 달린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뭐 스텔라도 그런데 세삼스럽게 놀라긴..;;;)
맵시나는 맵시의 후속이라는 뜻이다. 즉 가나다순을 생각하면 된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맵시나 이야기를 해보자.

맵시나는 74년 데뷔한 3세대 오펠 카데트가 아버지다. 오펠 카데트는 GM이 처음 월드카로 만든 차였다.(르망도 월드카였다).
월드카란 하나의 차종으로 세계 여러 곳에 공통되게 팔리는 모델을 말한다. 플랫폼은 물론 바디도 공유하고, 부품을 공동구매하여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이 월드카의 최대 목적이다. 즉 여러나라의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아나라 본사에서 하나의 모델을 개발하면 여러나라에서 그 베이스모델을 가져다 조립해 독자 브렌드를 붙어서 파는 것이다.

월드카의 대표적인 모델인 오펠 카데트의 해치백 스타일은 미국에서 시보레 쉐벳으로 만들어지고, 일본에서는 노치백 스타일의 이스즈 제미니로 나왔다. 현대 포니에 맞설 차가 필요했던 새한자동차(후에 대우자동차로 바뀜)는 77년 이스즈 제미니 모델을 들여와 판매를 개시했다. 당시 첨단 감각의 포니에 맞설 차로 1400cc 독일차의 피가 흐르는 제미니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듯했다. 그러나 고장이 잦고 연료소모가 커 포니의 독주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엔진은 전 모델 카미나의 것이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전세계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월드카는 전세계인의 불만을 산 싸구려 자동차로 전락한다. 한 곳의 취향에 맞추기 위한 노력은 다른 곳의 불만을 가져왔다. 마치 끝없이 자라는 잡초 같이. 그리고 싸게 구입한 부품을 필요한 지역으로 나르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GM의 1차 월드카 전략은 실패한다.

결국 제미니는 대우의 뛰어난 재탕기술력을 바탕으로 82년 초 맵시로 이름을 바꾸며 프론트 그릴을 슬랜드하게 손질했다. 억지에 가까운 변화가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플라스틱 사출이 흐느적거리는 그릴과 사각 헤드램프의 처리가 엉성했다. 독일에서는 이미 다음 세대 카데트가 나온 뒤였다. 한마디로 구형을 허접한 기술로 조립해 허접한 차로 만든것이다.

그리하여 재탕 맵시는 3탕과정을 밟어 83년 다시 맵시나로 바뀌고, 85년 초에는 4탕 맵시나 하이 디럭스 모델이 나왔다. 근데 재탕 맵시는 맛있게 말아먹었지만 3,4탕인 맵시나는 달랐다. 이 차는 당시 대우의 최고급 차량이었던 로얄 살롱을 축소한 모양으로 작은 차에 최고의 사치를 담았다. 독일과 일본에서는 사라진 모델이 한국에서는 크고 화려한 차로 탈바꿈한것이다. 월드카가 변신해 한국화한 결과가 맵시나이다. 85년 현대는 포니엑셀&프레스토로 미국과 한국에서 짭짤한 돈맛을 보고 있었다.
월드카의 산산조각난 잔해를 모아 만든 차 맵시나 하이 디럭스는 초탕 제미니의 최후의 엑기스였다. 그리고 그 최후의 엑기스는 대우가 80년대 고급승용차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도록 도와준 쓰디쓴 눈물의 엑기스였다.

 맵시나 디럭스는 86년 르망이 나올 때까지 대략 2만 대 정도 만들어졌다. 놀라지 말기를... 후속차량은 르망이다.;;

      *광고&사진 콜렉션*

      전형적인 80년대 광고군요...

                 이제는 거리가 아닌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맵시나의 84마력 V6 XQ엔진은 일상적인 드라이빙에 이상적이다.

                        어디선가 제미니의 냄새가...

                        당시 자동차 산업의 한계는 엔진과 실내 마감도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역시 맵시나도 실내
                       플라스틱마감도를 직접보면 실망을 금치 못한다.

                       왕관마크가 고급승용차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짝반짝 크롬~

                       번호판등이 왜 4개일까요??

                        앗! 휠에는 대우마크네요;;; 왕관 빠싱~

                       사진빨 먹여주기위한 커튼처리...

     죄다 하이디럭스 모델이네요;;;

          요놈도;;

      너마저 하이디럭스;;;

      그나마 옆에 있는 맵시나 원형...
  


      베이스가된 맵시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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