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더라도 잘봐주세요;;;.. (기왕이면 광고 클릭도...)


주지아로의 다자인+미쓰비시의 기술+현대의 의지 = 현대 포니


 포니 광고 (1975년)


새나라와 브리사가 점령하고 있던 70년대초의 도로에 포드의 유명모델들을 들여와 조립해 골치나(웒래이름 코티나, 너무고장이 많아서 택시 기사들 사이에선 골치나로 불렸음..)와 같은 명작(?)을 만들던 현대라는 회사는 그냥 우리나라 도로사정에 안맞는 골치나는 차나 양키들에게 들여와서 조립하는 2류회사에 불과했습니다. 근데 안좋은 이미지에 하늘은 재를 뿌리려는 심상이었는지 현대 울산공장이 폭우로 모두잠겨 포드 부품과 완성차들이 모두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자신들의 고유모델이 팔요하다고 판단 했는지 현대는  포드에게 기술이전을 받아서 차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포드사는 기술이전만은 절대안된다고, 니들은 짜져서 걍 우리가주는 골치나는 차나 조립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현대는 기여히 배신을 때릴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름하여 독자모델 만들기 프로젝트!
이탈디자인&미쓰비시자동차와 함께 독자모델 만들기에 착수합니다.(기술이 없으니 해외에서 배워야겠죠..) 그리하여 현대가 그토록 갈망하던 고유모델의 컨셉커인 포니쿠페3도어가 주지아로의 수려한 디자인 실력으로 74년 선보입니다.(물론 포니쿠페는 시판되진 못했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포니쿠페3도어는 국민들의 사치심조장 및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시를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세월은 흘러 1975년 귀여운 조랑말모양의 앰블럼을 달고 예쁘장한 포니가 출시됩니다. 당시 포니가 처음 나왔을때 브리사, 새나라와 같은 차만 보던 우리나라 국민들은 저것들이 또 이상한 디자인의 골치나는 차를 출시했구나라고 반응을보이며 안살것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포니는 곁으로 보기에는 해치백스타일이나, 실제로는 캐빈룸과 트렁크룸이 분리되어있는 특이한 모냥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포니를 사본사람들이 성능과 실내공간 활용도가 우수하다는 소문을 내면서 드디어 판매에 시동이 걸립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2번째(일본이 첫번째), 세계에서 16번째로 고유모델을 만든 나라가 되었습니다.

후륜구동방식의 미쓰비시 1,238cc 직렬 4기통 새턴엔진을 얹었고, 후에는 1,439cc 엔진도 출시 되었습니다.

포니는 에콰도르에서 5대를 계약받아 처음으로 수출했습니다. 그후 미국, 영국등 여러나라에서 판매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10,726대가 판매되어 43.6%의 점유율을 보이며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를 열었습니다.
[당시 현대건설에 다니던 이명박대통령도 포니 제작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찍찍찍..)]

포니제원

더보기


 구분 1.2 1.4 
 사용연료 가솔린  가솔린 
 배기량(cc) 1,238  1,439 
 최고출력(ps/rpm) 80/6,300 92/6,300 
 최대토크(kg*m/rpm) 10.8/4,000 12.5/4,000 

사진들

             토리노 모터쇼에 참가한 포니







             인테리어 소개

             멋진계기판과 실내, 갖고싶다;....















































참조 : 구글,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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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막의 여우 롬멜 2010.10.17 1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동차에 관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써주셨으면 좋겠는데...


가히 국민 중형차라 불릴만한 최고의 베스트 셀링카였다. 매우 딸리는 엔진만 빼면 말이지...;;



소개영상 (1983년) (출력이낮습니다.)


현대 스텔라는 1983년부터 1997년(일반승용차는1991년까지 생산됨)까지 현대자동차에서 생산된 후륜구동의 중형승용차입니다. 스텔라는 당시 중형자동차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대우자동차의 로얄시리즈에 맞서기 위하여 탄생하였습니다. 스텔라는 포드 코티나의 샤시를 이용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현대 최초의 고유모델입니다. 디자인은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맡았습니다.
스텔라를 바탕으로 소나타(Y1)가 탄생했습니다(1987년 쏘나타가 풀체인지되면서 스텔라 GXL로 개명되어 1991년까지 팔렸습니다.)
1983년 당시의 국산차는 모두 수동변속기 그것도 4단에 불과했고, 자동변속기 차량은 거의 전무했습니다.(포니오토가거의유일..) 스텔라는 바로 이점을 노려 국산 자동차 최초의 5단변속기차량이라고 자랑하는 광고를 하여 동력성능 면에서 월등함을 강조했습니다.(포니엔진에 5단변속기;;;) 이런 점 때문에 인기를 얻은 스텔라는 입소문을 타고 마침내 엄청난 판매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당시 월 판매량이 2,000여대 였는데 이는 80년대 당시 국산자동차 시장기준으로 보면 매우 큰 숫자였다. 요즈음으로 치면 쏘나타가 매달 10000여대 판매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배우 금보라나 안성기도 스텔라를 뽑았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잘나가던 스텔라에 큰문제가 생기었습니다. 차량 배선 문제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결국 스텔라의 판매는 곤두박질을 치고 맙니다. 그러자, 현대는 스텔라를 1.5엔진으로 단일화해, 판매량을 다시 끌어올리게 됩니다.
1985년에는 5마일 범퍼를 장착하고 모켓시트를 채용한 캐나다 수출용모델인 CXL(Canada eXported Limited)모델을 출시합니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 공식차량(스텔라88)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변속기는 미쯔비시 제품을 썼습니다. 엔진은 1986년까지 포니2에 사용되던, 1.4와 1.6엔진을 썼다.(이래서 스텔라가 힘이 안습이라고 햇었음;;; 크기는 소나타인데 엔진은 포니;;;) 그뒤인 1987년에 2.0이 더해졌다. 이 2.0L엔진이 그 유명한 4G63엔진(일명 시리우스 엔진)이다. 미쯔비시에서도 시리우스엔진을 9세대 란에보가 생산될때까지 달 정도로 내구성이 좋았다고 합니다. 자가용은 1992년에, 택시용은 1997년에 단종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됩니다.

*광고와사진

스텔라 광고 (1983년)(소리출력이약간높습니다.)


스텔라프리마 (1984년) 골든팩이 유명했었죠..

     요놈이 당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오토자동차인 포니오토매틱. 그다지 잘팔리지는 못했다.

                          프리마는 새로워진 그릴과 크롬장식, 그리고 그 유명한 골든팩이 적용되어 화제가 되었던 모델이다.
 
     1400cc엔진을 얹은 스텔라 프리마E, 경제성을 강조했던 모델이다.

     안성기씨도 스텔라를 탔었다.

     5마일범퍼등 캐나다 수출용에만 있던 기능을 달고 나왔던 유명인사 스텔라CXL

 
'카나다 수출형 스텔라 CXL!' 광고 (1985년)

     스텔라중 제일 싼 모델이었던 스텔라GX

     초기 쏘나타(Y1)는 스텔라를 가져다가 옵션만 추가시킨 것이었다.

                                1.8MPi엔진을 얹어서 힘을 향상시켰던 스텔라1.8i

     스텔라 프리마



                                     
                                      영국잡지에도 소개된 스텔라.

                                      다이하쯔,타보트사의 동급차량과 비교


                                          영국 책자.

                                           





                                            so much car you'll hardly believe the price.

                       내부



                       멋진 흑백사진.

                                       영국광고


 
영국광고 (1984년) (여러 잡광고가 셖여있습니다.)

                    

                                 스텔라 CXL

                       택시용 스텔라 1991년)

           스텔라는 원래 로얄왕국과 맞써기위해 탄생하였지만 어쩌다가 패밀리 세단이 되버렸다..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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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로는 디자인면에서 당시 경쟁차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그러나 고질적인 대우병(부실한마무리, 딸리는힘)이 이차의 좋은점까지 묻어버렸다.-


에스페로 광고(1990년)


에스페로(Espero)라는 뜻은 '희망한다, 기대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스페인어입니다. 이차는 대우가 쏘나타를 앞지르기위한 희망이자 기대작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현대자동차에게 중형승용차 시장을 빼앗기자 대우자동차는 위기 의식을 느꼈습니다. 1986년 개발을 시작해 4년이 조금지난 1990년 9월, 양산을 시작했습니다.
에스페로는 대우자동차에서 컨셉과 이미지를 정하고 베르토네사에 파견한 디자이너와 설계자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한 첫 독자모델이었습니다.
배기량 2,000cc의 다이나믹 스타일을 지닌 중형세단으로써 미래적인 날렵한 유럽형 스타일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 르망과 로얄시리즈의 중간 사이즈를 가진 모델이 필요했던 대우자동차는 '에스페로'에 큰기대를 했다.

디자인

당시 한국자동차시장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디자인이었습니다. 과감히 라지에이터그릴을 삭제하였습니다.(1세대 아반떼도 라지에이터그릴이 없었다.) 앞과 옆, 그리고 뒷유리로 이어지는 C필러 부분을 유리재질로 감싸 날렵한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풍겼다. (그러나 당시 국내기술의 한계가 디자인 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스타일을 다듬고 후방 시야를 넓히기 위하여 '6-윈도우'를 채택하였지만 뒷부분 도어 유리에 분할 바를 넣었습니다. 이 분할바는 에스페로의 디자인에 흠집을 주었다.)
여러가지 종류의 충돌사고로부터의 탑승자의 안전을 확보해주는 랩어라운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으며 차체의 라인이 매끈하게 잘 처리되었습니다. 또한 넓은 실내공간을 확보(당시 동급차종중 최대축간거리를 자랑함)하여서 실내 쾌적성이 높았다.
차량 범퍼 아래쪽에 커다란 에어땜(차량 하체에서 생기는 소용돌이를 억제해주는 역할)을 설치하여 공기역학적부분에서 뛰어난 성능을 냈습니다.(에스페로공기저항계수 : cd 0.29) 송풍구를 도어트림 쪽에 달고 도어 열림장치를 수평방향이 아닌 수직방향으로 설계하였습니다.
대우자동차의 전통대로 트렁크를 넓게 설계했다. 그리고 뛰어난 승차감과 주행성능으로 호평 받은 르망의 앞 스트롯, 뒤 콤파운트 링크 서스펜션을 그대로 이용했습니다. 르망의 휠베이스를 조금 넓혀 플랫폼을 완성해 개발비를 크게 줄였습니다.(자동차 휠베이스의 재활용??) 

초년

초기 에스페로는 르망에 쓰이고 있었던 2000cc 100마력 엔진이었다. 2000cc 엔진을 얹고 1세대 에스페로가 1990년 출시하였지만 엘란트라로 1500cc급 준중형차 시장이 형성되면서 크기는 쏘나타보다 작으면서 2000cc의 엔진을 얹은 에스페로의 위치가 모호해졌습니다.(쏘나타 + 엘란트라;;; = 안습//) 이로 인해 선보인 지 얼마 되지 않아 판매부진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중년&말년

대우자동차는 판매부진에 시달리던 에스페로에게 1991년 2월 독자개발한 1.5 DOHC, 100마력짜리 엔진을 하사 하였습니다. 이 엔진은 영국의 유명한 스포츠카 제조업체인 로터스사(나중에 기아에서 스포츠카인 엘란을 출시했는데 그모델을 만든회사가 로터스임)의 자문을 받아 설계되었습니다. 이 엔진은 중·저속 RPM 구간에서 최대토크를 발휘하도록 셋팅해 한국실정에 맞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대우자동차가 처음으로 독자개발한 1.5DOHC 엔진은 초기에 많은 취약점을 드러냈습니다. 고속 주행성능은 동급 차량들에 비해 떨어졌으며 부품의 정밀도가 떨어져 엔진오일이 새거나 노킹 현상을 보이는 차가 많았고 급가속 때 소음과 진동이 심하였습니다. 훗날 이 문제점은 해결되었으나 결국 에스페로의 이미지에 흠집을 주고 말았습니다. 

에스페로의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당시 대우는 과감한 마케팅 전략을 펼칩니다. 전국에서 모집한 품질평가단 100명에게 에스페로를 한대씩 빌려주고 달라진 대우자동차를 직접 느껴보라는 '에스페로 품질평가단' 을 펼쳐 판매증진에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마케팅 전략은 유럽시장 진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로인해 에스페로는 드디어 선진국인 영국에 1995년 상륙합니다.

탑기어-대우자동차 (1997년)(탑기어가 무슨 프로인지는 알거라고 믿음)

가격부터 성능까지 자랑할거 없던 안습 대우자동차는 1991년 11월 태일램프를 콤비네이션(피자아님..) 타입으로 교체하고 시트의 재질을 고급으로 높인 92년형 에스페로를 선보이고, 1993년 4월 라디오안테나와 휠 디자인이 변형되었고 이전에 있었던 2.0L, 1.5L 엔진 모델에 1.5L MPFi 90마력 모델이 추가된 새 에스페로를 선보였습니다.

에스페로는 1990년 9월에 탄생하여 1997년 12월까지 54만6천520대가 생산, 이 가운데 23만6천882대가 해외로 수출되었습니다. 에스페로는 90년대 대한민국 중형차 시장 역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대한민국 시장에서는 '비교적 싼값에 중형차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차'로 인기를 모았고 해외시장에서는 같은가격에 동급 차량들 보다 편의장비가 풍부하고 차체가 중후함이 좋은 차로 평가받았습니다.(그러나 5년뒤 에스페로는 외국에서 안습혹평을 받습니다;;; 역시 문제점은 나중에 드러나는듯... 그래도 개발도상국에서 에스페로가 아직까지는 잘 굴러다님...)

*사진, 비디오*

      에스페로~~~

                                1세대 뒷태

              1.5 DOHC모델 국산차는 이때쯤부터 엔진룸이 꽉차기 시작했다.
  
     2세대 앞

                          2세대 뒤
 
      2세대 옆

      탄생 에스페로!

           대우의 상징, 전자계기판!

      1세대 앞

      요놈도 1세대

      아바떼도 라지에이터그릴이 없다.

      대우 품질평가단, 지상비행광고(탑건의 주제가가 들어가서 화제가 된 광고!)


 
 광고 (1991년) 


지상비행편 (1991년)


 광고 (1991년)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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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굴탐험 2010.11.15 1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사회 첫 차였던지라 관심.....
    그리고 아직도 내 맘속 1순위로 있는 차라 관심있네요.
    정확히는 대우자동차가 GM과 분리후, 홀로서기과정에서 나온 차죠.
    르망의 차체와 파워트레인 등 여러모로 완결성에 아쉬움이 있을 수 있으나, 디자인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잠재울 수 있는... (물론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아직도 인상적인 것은 낮은 차체, 시트포지션... 엘란트라와 좁은 길에 마주치면 사이드 미러가 부딪치지 않습니다. 그만큼 낮다는 거죠. 직경이 적은 스트이링 휠, 파격적인 실내 디자인. 센터페시아는 약간 아쉽지만.... 베르토네 최고 작품중의 하나가 아닐지...

    • 어쩡이 2010.11.27 2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요. 베르토네의 역작중 하나로 뽑고 싶네요. 대우의 기술력이 뒷받침 되었다면 최고의 명작이었겠지요..
      그래도 보수적경향이 강한 한국시장에 이런 파격적인차를 선보임으로써 한국인들의 차고르기 기준을 업그레이드 했다는 점은 정말 칭찬하고 싶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호소*
구글광고좀 많이 눌러주세요.(제발;;;) 댓글좀써주세요.


포니엑셀광고 (1985년)


프레스토광고 (1985년)

프레스토, 포니엑셀(프로젝트명 X1)은 출시 당시 전륜구동이라는 새로운 메카니즘으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에 전륜구동이라는 유행을 몰고 왔습니다. 프레스토, 포니엑셀이 전륜구동의 장점을 부각시킨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그뒤로 나온 차들은 모조리 전륜구동으로 바뀌었습니다. (철따라 바뀌는...;;) 
또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멋들어진 디자인으로 자동차 시장을 장악해나갔습니다. 하지만 주지아로의 멋진디자인에도 불구하고 포니엑셀은 해치백 모델이어서 한국인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엔진은 일본 미쯔비시사의 오리온 엔진이 장착되었고 1.3엔진과 1.5엔진이 있었다. 포니엑셀이라는 이름은 1986년에 해외수출명과 동일한 엑셀로 바뀌었으며, 프레스토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1986년 현대 포니엑셀, 프레스토는 엑셀(Excel)이란 이름으로 미국에 처음으로 정식수출됩니다.(포니도 해외로 수출되었지만 현대가 정식으로 판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즉 해외상사가 포니를 데리고 간거죠.) 
엑셀은 싼 값을 무기로 판매를 늘려나갔고, 한해동안 16만 여대를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하여 엑셀은 외제차 총 수입대수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엑셀신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잦은 고장, 부실한 사후 처리(A/S)로 현대자동차의 이미지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지금도 이미지가 안좋은 이유중 하나) 현대는 1980년대에 미국에서 극과극의 상황을 맛보았다. 두 차량은 1989년에 단종되게 된다. 후속모델은 엑셀(프로젝트명 X2)이다.

*포니엑셀, 프레스토가 걸어온 길*
1985년 : 포니엑셀, 프레스토 시판
1986년 : '포니엑셀'을 '엑셀'로 차명을 변경하여 시판
1987년 : 엑셀 스포티(3도어) 시판
1989년 : 포니엑셀, 프레스토 단종

*라인업*
1985년 : 5도어 슈퍼 (Super), TX, FX
1987년 : 3도어 스포티 슈퍼 (Super)

                          *사진과동영상*

                         한국에서 팔던 내수용 포니엑셀과 다른점은 5마일범퍼와 들어간 헤드렘프다.

        미국광고 cars that make sense라는 문구가 항상 광고뒤에 나왔다.


 
미국에서 팔던 엑셀광고 (1988년)

        디자인만큼은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다섯번 놀랐읍니다-엑셀' 신문광고

      포니엑셀스포티 내부

     '완벽한 테스트만이 한차원 높은 차를 만듭니다.'

                        미국에서 팔았던 프레스토 AMX


                      
                        '썬루프세단 프레스토 ETR~'

                        
     현대자동차가 엑셀과 스텔라로 세계일주를 하면서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쉬고 있는모습.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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