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의 기술변천사가 로얄시리즈에서 모두 드러난다. (그속에서 서서히 망해가던 대우의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
초기 (1972년~1980년)
(회사변천 : GM코리아->새한->대우자동차, 차종 : 레코드시리즈->로얄시리즈, 베이스 : GM->OPEL)

이 모델이 GM코리아에서 새한자동차로 바뀌던 시절 나온 고급모델 레코드입니다.
이 모델이 로얄시리즈의 시초로 따질 수 있습니다. (시초는 시초일뿐 같은 모델로 취급하진 않겠습니다. 제목에는 78년으로 써놓고 부제엔 72년으로 써논 이유입니다.)
오펠의 레코드를 베이스로 하였습니다.
모약부터 앰블럼까지 어느하나 안빠뜨리고 들여온지라 우리나라에는 절대 맞지 않은 차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길과 궁합이 맞지 않는 낮은 저상고와 오일쇼크로 힘들던 시절에 GM특유의 낮은연비와 요란하신 품행으로 욕좀 많이드셨습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말아 드셨습니다.

음.. 이쁜디 말여...

 여하튼 레코드로 한번 말아드신 새한은 78년 현대그라나다가 출격후 대박을 치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오펠이 병주고 약주고를 실천하시련지 당시 서독 최신인기모델인 세나토와 몬자, 레코드를 만들며 우려먹기의 황제임을 과시하던 C-Car Project 베이스를 새한모더스님께 하사하려 합니다.

이에 새힌은 응용따윈 건너뛰고 그중 가장 울궈 먹기 좋아 보이는 레코드 베이스를 그대로 모셔와 조립합니다.
그리고 판매합니다.
음... 뭔가 빠졌군요...
네.. 마케팅이라는 상술을 8년만에 깨달은 다윈진화론에 입각한 새한은 진화를 시작합니다.

그래! 아거야!! 좀 있어보이는 단어를 사용하자구...!
'에어로 다이나믹스.. 어쩌구저쩌구..'
이제 좀 팔립니다... 판매를 꽤 짭짤이한 새한은 대우와 합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로얄이란 이름이 하사됩니다!!
됐어! 성공했어!!
엄마 아빠 김우중씨 나 드디어 고급차 만들었어!!!

국내 승용차 역사중 최악으로 기록됬을 미친존재감 로얄디젤...은 다음글에서... ㅋㅋㅋ

다음글에서 게속....

사진출처 : 소장, 구글
지식출처 : 내머리속, 위키백과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불펌하지 맙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댓글 써줍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광고 눌러줍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저작권 엄수 합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홍보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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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리스 2011.04.15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들이 많네요~다음 편도 기대 하겠습니다.

  2. マーチ 2014.10.20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기 레코드로얄은 말아먹기는커녕 1973년경에 경쟁모델이던 현대 포드 20M이 조기에 단종되는 바람에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사실상 시장 독점 효과를 누리며 높으신 분들의 애마로 어느정도 팔렸습니다. 포드 20M보다 차체는 작았지만 4기통 엔진이라 연비는 포드 20M 보다 좋았습니다. 게다가 코드명도 틀렸는데 오펠 레코드 계열은 C-Car가 아닌 V-Car 입니다.
    그리고 뉴 레코드 로얄은 오히려 그라나다 보다 2달 먼저 시판되었고, 뉴 레코드 로얄이 1978년 8월, 그라나다가 1978년 10월에 나왔습니다. 그라나다도 나온지 얼마 안되어서 78~79년 2차 오일쇼크 때문에 당시 장관급 관료들의 관용차들을 4기통 엔진으로 제한하는 바람에 6기통 엔진인 그라나다는 제대로 물먹어버리고, 4기통 엔진이던 새한(대우)의 로얄이 반사이익을 얻던 시절입니다.


부족하더라도 잘봐주세요;;;.. (기왕이면 광고 클릭도...)


주지아로의 다자인+미쓰비시의 기술+현대의 의지 = 현대 포니


 포니 광고 (1975년)


새나라와 브리사가 점령하고 있던 70년대초의 도로에 포드의 유명모델들을 들여와 조립해 골치나(웒래이름 코티나, 너무고장이 많아서 택시 기사들 사이에선 골치나로 불렸음..)와 같은 명작(?)을 만들던 현대라는 회사는 그냥 우리나라 도로사정에 안맞는 골치나는 차나 양키들에게 들여와서 조립하는 2류회사에 불과했습니다. 근데 안좋은 이미지에 하늘은 재를 뿌리려는 심상이었는지 현대 울산공장이 폭우로 모두잠겨 포드 부품과 완성차들이 모두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자신들의 고유모델이 팔요하다고 판단 했는지 현대는  포드에게 기술이전을 받아서 차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포드사는 기술이전만은 절대안된다고, 니들은 짜져서 걍 우리가주는 골치나는 차나 조립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현대는 기여히 배신을 때릴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름하여 독자모델 만들기 프로젝트!
이탈디자인&미쓰비시자동차와 함께 독자모델 만들기에 착수합니다.(기술이 없으니 해외에서 배워야겠죠..) 그리하여 현대가 그토록 갈망하던 고유모델의 컨셉커인 포니쿠페3도어가 주지아로의 수려한 디자인 실력으로 74년 선보입니다.(물론 포니쿠페는 시판되진 못했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포니쿠페3도어는 국민들의 사치심조장 및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시를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세월은 흘러 1975년 귀여운 조랑말모양의 앰블럼을 달고 예쁘장한 포니가 출시됩니다. 당시 포니가 처음 나왔을때 브리사, 새나라와 같은 차만 보던 우리나라 국민들은 저것들이 또 이상한 디자인의 골치나는 차를 출시했구나라고 반응을보이며 안살것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포니는 곁으로 보기에는 해치백스타일이나, 실제로는 캐빈룸과 트렁크룸이 분리되어있는 특이한 모냥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포니를 사본사람들이 성능과 실내공간 활용도가 우수하다는 소문을 내면서 드디어 판매에 시동이 걸립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2번째(일본이 첫번째), 세계에서 16번째로 고유모델을 만든 나라가 되었습니다.

후륜구동방식의 미쓰비시 1,238cc 직렬 4기통 새턴엔진을 얹었고, 후에는 1,439cc 엔진도 출시 되었습니다.

포니는 에콰도르에서 5대를 계약받아 처음으로 수출했습니다. 그후 미국, 영국등 여러나라에서 판매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10,726대가 판매되어 43.6%의 점유율을 보이며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를 열었습니다.
[당시 현대건설에 다니던 이명박대통령도 포니 제작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찍찍찍..)]

포니제원

더보기


 구분 1.2 1.4 
 사용연료 가솔린  가솔린 
 배기량(cc) 1,238  1,439 
 최고출력(ps/rpm) 80/6,300 92/6,300 
 최대토크(kg*m/rpm) 10.8/4,000 12.5/4,000 

사진들

             토리노 모터쇼에 참가한 포니







             인테리어 소개

             멋진계기판과 실내, 갖고싶다;....















































참조 : 구글,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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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막의 여우 롬멜 2010.10.17 1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동차에 관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써주셨으면 좋겠는데...


가히 국민 중형차라 불릴만한 최고의 베스트 셀링카였다. 매우 딸리는 엔진만 빼면 말이지...;;



소개영상 (1983년) (출력이낮습니다.)


현대 스텔라는 1983년부터 1997년(일반승용차는1991년까지 생산됨)까지 현대자동차에서 생산된 후륜구동의 중형승용차입니다. 스텔라는 당시 중형자동차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대우자동차의 로얄시리즈에 맞서기 위하여 탄생하였습니다. 스텔라는 포드 코티나의 샤시를 이용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현대 최초의 고유모델입니다. 디자인은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맡았습니다.
스텔라를 바탕으로 소나타(Y1)가 탄생했습니다(1987년 쏘나타가 풀체인지되면서 스텔라 GXL로 개명되어 1991년까지 팔렸습니다.)
1983년 당시의 국산차는 모두 수동변속기 그것도 4단에 불과했고, 자동변속기 차량은 거의 전무했습니다.(포니오토가거의유일..) 스텔라는 바로 이점을 노려 국산 자동차 최초의 5단변속기차량이라고 자랑하는 광고를 하여 동력성능 면에서 월등함을 강조했습니다.(포니엔진에 5단변속기;;;) 이런 점 때문에 인기를 얻은 스텔라는 입소문을 타고 마침내 엄청난 판매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당시 월 판매량이 2,000여대 였는데 이는 80년대 당시 국산자동차 시장기준으로 보면 매우 큰 숫자였다. 요즈음으로 치면 쏘나타가 매달 10000여대 판매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배우 금보라나 안성기도 스텔라를 뽑았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잘나가던 스텔라에 큰문제가 생기었습니다. 차량 배선 문제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결국 스텔라의 판매는 곤두박질을 치고 맙니다. 그러자, 현대는 스텔라를 1.5엔진으로 단일화해, 판매량을 다시 끌어올리게 됩니다.
1985년에는 5마일 범퍼를 장착하고 모켓시트를 채용한 캐나다 수출용모델인 CXL(Canada eXported Limited)모델을 출시합니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 공식차량(스텔라88)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변속기는 미쯔비시 제품을 썼습니다. 엔진은 1986년까지 포니2에 사용되던, 1.4와 1.6엔진을 썼다.(이래서 스텔라가 힘이 안습이라고 햇었음;;; 크기는 소나타인데 엔진은 포니;;;) 그뒤인 1987년에 2.0이 더해졌다. 이 2.0L엔진이 그 유명한 4G63엔진(일명 시리우스 엔진)이다. 미쯔비시에서도 시리우스엔진을 9세대 란에보가 생산될때까지 달 정도로 내구성이 좋았다고 합니다. 자가용은 1992년에, 택시용은 1997년에 단종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됩니다.

*광고와사진

스텔라 광고 (1983년)(소리출력이약간높습니다.)


스텔라프리마 (1984년) 골든팩이 유명했었죠..

     요놈이 당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오토자동차인 포니오토매틱. 그다지 잘팔리지는 못했다.

                          프리마는 새로워진 그릴과 크롬장식, 그리고 그 유명한 골든팩이 적용되어 화제가 되었던 모델이다.
 
     1400cc엔진을 얹은 스텔라 프리마E, 경제성을 강조했던 모델이다.

     안성기씨도 스텔라를 탔었다.

     5마일범퍼등 캐나다 수출용에만 있던 기능을 달고 나왔던 유명인사 스텔라CXL

 
'카나다 수출형 스텔라 CXL!' 광고 (1985년)

     스텔라중 제일 싼 모델이었던 스텔라GX

     초기 쏘나타(Y1)는 스텔라를 가져다가 옵션만 추가시킨 것이었다.

                                1.8MPi엔진을 얹어서 힘을 향상시켰던 스텔라1.8i

     스텔라 프리마



                                     
                                      영국잡지에도 소개된 스텔라.

                                      다이하쯔,타보트사의 동급차량과 비교


                                          영국 책자.

                                           





                                            so much car you'll hardly believe the price.

                       내부



                       멋진 흑백사진.

                                       영국광고


 
영국광고 (1984년) (여러 잡광고가 셖여있습니다.)

                    

                                 스텔라 CXL

                       택시용 스텔라 1991년)

           스텔라는 원래 로얄왕국과 맞써기위해 탄생하였지만 어쩌다가 패밀리 세단이 되버렸다..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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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
구글광고좀 많이 눌러주세요.(제발;;;) 댓글좀써주세요.


포니엑셀광고 (1985년)


프레스토광고 (1985년)

프레스토, 포니엑셀(프로젝트명 X1)은 출시 당시 전륜구동이라는 새로운 메카니즘으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에 전륜구동이라는 유행을 몰고 왔습니다. 프레스토, 포니엑셀이 전륜구동의 장점을 부각시킨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그뒤로 나온 차들은 모조리 전륜구동으로 바뀌었습니다. (철따라 바뀌는...;;) 
또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멋들어진 디자인으로 자동차 시장을 장악해나갔습니다. 하지만 주지아로의 멋진디자인에도 불구하고 포니엑셀은 해치백 모델이어서 한국인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엔진은 일본 미쯔비시사의 오리온 엔진이 장착되었고 1.3엔진과 1.5엔진이 있었다. 포니엑셀이라는 이름은 1986년에 해외수출명과 동일한 엑셀로 바뀌었으며, 프레스토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1986년 현대 포니엑셀, 프레스토는 엑셀(Excel)이란 이름으로 미국에 처음으로 정식수출됩니다.(포니도 해외로 수출되었지만 현대가 정식으로 판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즉 해외상사가 포니를 데리고 간거죠.) 
엑셀은 싼 값을 무기로 판매를 늘려나갔고, 한해동안 16만 여대를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하여 엑셀은 외제차 총 수입대수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엑셀신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잦은 고장, 부실한 사후 처리(A/S)로 현대자동차의 이미지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지금도 이미지가 안좋은 이유중 하나) 현대는 1980년대에 미국에서 극과극의 상황을 맛보았다. 두 차량은 1989년에 단종되게 된다. 후속모델은 엑셀(프로젝트명 X2)이다.

*포니엑셀, 프레스토가 걸어온 길*
1985년 : 포니엑셀, 프레스토 시판
1986년 : '포니엑셀'을 '엑셀'로 차명을 변경하여 시판
1987년 : 엑셀 스포티(3도어) 시판
1989년 : 포니엑셀, 프레스토 단종

*라인업*
1985년 : 5도어 슈퍼 (Super), TX, FX
1987년 : 3도어 스포티 슈퍼 (Super)

                          *사진과동영상*

                         한국에서 팔던 내수용 포니엑셀과 다른점은 5마일범퍼와 들어간 헤드렘프다.

        미국광고 cars that make sense라는 문구가 항상 광고뒤에 나왔다.


 
미국에서 팔던 엑셀광고 (1988년)

        디자인만큼은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다섯번 놀랐읍니다-엑셀' 신문광고

      포니엑셀스포티 내부

     '완벽한 테스트만이 한차원 높은 차를 만듭니다.'

                        미국에서 팔았던 프레스토 AMX


                      
                        '썬루프세단 프레스토 ETR~'

                        
     현대자동차가 엑셀과 스텔라로 세계일주를 하면서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쉬고 있는모습.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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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추종을 불허한 미래형 고성능 소형승용차
 


대우자동차 르망 광고(1986년)

르망의 등장은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 혁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그혁명적인 모델은 디자인, 성능면에서 다른차들에 비해서 조금도 뒤지지않았습니다. (언제나 대우는 그랬다. 왜냐하면 해외시장에서 검증된 모델을 들여와 조립 생산했기 때문이다.;;;)
르망의 기본모델은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오펠의 카데트입니다. 카데트를 만든 오펠은 다소 복잡한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펠은 미국의 유명 자동차 회사인 GM의 자회사입나다. 그중 소형차 기술지원 및 엔진을 일본 이스즈(ISUZU, 트럭으로도 유명한 일본의 자동차 회사)에서 지원 받았습니다. GM이 이스즈에서 지원을 받은 이유는 GM이 주로 대형차만을 생산해서 소형차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잠깐! 오펠이 무슨회사인지 궁금하시다면 더보기를 눌러주세요^^

더보기


1986년 GM, 오펠, 대우는 '독일 오펠차를 대우가 생산, 판매는 GM의 폰티액이 맡는다'는 월드카 프로젝트를 수립합니다. 그래서 위에서보신 르망 광고에서 월드카라고 떠든것입니다. (참고로 미국에서 팔던 폰티액 르망도 우리나라에서 보던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르망의 베이스 모델인 오펠의 카데트

르망의 베이스모델인 오펠 카데트는 배기량 1.6ℓ과 2.0ℓ이 주를 이룹니다. 1.6ℓ모델이 카데트의 기본모델 입니다. 대우는 카테트의 기본모델 라인을 도입하여 르망을 생산하기로 하였으나 1.6ℓ엔진은 국내 세제상 불리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대우는 국내 실정에 맞게 엔진의 실린더 보어를 약간 줄이는 손질을 가해 86년 7월 1.5ℓ엔진의 르망을 내놓았다.
디자인에서 르망은 여태까지 우리나라에서 보던 포니, 제미니(1977년 출시된 대우의 소형차)와 전혀다른 혁신적인 모냥새였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존에 국내 차들에서는 언급도 못하던 공기 저항계수를 논할정도로 디자인면에서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공기저항계수: cd0.32) (이전의 국산차들은 한결같은 박스같은 모냥이어서 공기 저항계수라는 것을 언급도 못하였다.)

르망스펙
  • 길이 4,394mm, 너비 1,663mm, 높이 1,362mm, 1,498cc 89마력의 수랭식 직렬 4기통 전자제어 점화장치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최고시속은 170km 이었습니다.
  • 전자식 점화장치를 쓴 카뷰레이터 엔진의 1세대에 이어 88년 9월에는 미국 수출용에 장착하였던 직접분사방식의 TBi엔진을 얹어 2세대 르망시대를 열었습니다. (당시 전자장치가 들어갔다는 광고를 보고 초딩들이 르망이 전격Z작전에 나온 키트처럼 말한다고 하기도 했었다... 옅은지식;;;;)

91년 2월에는 양산차로는 처음으로 튜닝파츠를 쓴 르망 이름셔 모델을 내놓아 카매니아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지난글을 참고 하시길...)

1997년 2월 단종될 때까지 100만대가 넘게 생산되었습니다.


르망 사진과 광고...

      르망1세대

                      "어떤 르망을 원하십니까?"

      르망1세대 (이제품은 미국에서 팔던 폰티악 르망과 같은모델)

      88년 9월에 미국 수출용에 장착하였던 직접분사방식의 TBi엔진을 얹은 2세대 르망 출시.

     2세대르망 내부. 전자계기판이 매우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차중하나인 르망GSi(1989년)

 
르망GSi광고 (1989년)


      3세대 르망

      악! 전자계기판은 어디로?!!!!

      3세대 뒷태

     경쟁차종이었던 현대 포니엑셀, 프레스토

기왕오신거댓글좀써주세요..... 사진과글은 눈으로만...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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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르릉 2011.03.29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위 사진중 오펠 카데트라고 적은 모델은 오펠 레코드 같습니다.

    • 어쩡이 2011.03.31 1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펠이 팔던차들은 하나같이 이름에 복잡합니다. 독일에서 팔던모델은 레코드, 남미쪽과 한국에서 팔던 동일차종의 이름은 로얄레코드, 프랑스와 일부 유럽국가에선 카데트라는 이름으로 팔렸습니다. GM월드카계획이 낳은 난해한결과죠;;;^^

  2. 체리QQ 2011.05.29 0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위에 사진에 있는 오펠 카데트는 확실히 대우 로얄시리즈의 모체 레코드네요. 앞모습과 옆모습이 국내출시 모델인 대우 로얄프린스와 동일합니다.
    오펠 카데트는 1세대 르망과 판박이죠.

  3. 체리QQ 2011.05.29 0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고하시라고 남겨봅니다.
    http://www.opel-kadett.com/gallery/1987/opel-kadett-e-photo-large.html

  4. Rudedog 2012.02.04 1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데트 모델은 맞는데 르망이 베이스로한 카데트의 전모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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