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연재니깐 간단하게 맛보기글부터 들어가겠습니다..


망자의 한이라고 해야할까?

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세계경영이란 슬로건하에 공격적 M&A와 공격적 외채도입경영으로 특히 동구권과 개발도상국에서 매일 그기세를 높여가던 대우그룹이란 회사가 있었습니다.

                                   ▲ 99년말 대우는 20개가 넘는 자회사(하청업체, 부서제외)를
                                       거느린 명실상부 재계1위 회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우는
                                       안내판에 써있는 회사들중 '주식회사 대우' (옛 대우실업)를
                                       제외한 모든 회사는 M&A 승리의 전리품이었습니다.
                                       <98년, 대우빌딩입구에 붙어있던 안내판>


리고 대우자동차가 있었습니다.

▲ 93년, 대우자동차는 이렇다 할 모델없는 업계꼴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아시아, 쌍용자동차 제외)
현대가 80년대 자체기술개발에 매진할동안 대우는 그냥 오펠에서 레코드하고 홀덴에서 코모도어 들여와서 로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팔았으니 이런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우가 당시 꺼내든 카드였던 세계경영의 일환으로 대우자동차에도 김우중의 손이 미치기 시작합니다.
<93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홍보전시관내>

"몇몇 사람들말에 의하면 김우중회장은 세계경영카드를 꺼내기전까지만하도 대우차계열에는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르망이 히트쳐도 로얄이 히트쳐도 점점 몰락해가던 시기에도 별관심이 없었고 그 이유로 92년까지 GM과의 합작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귀찮아서?) 그리고 가끔 GM의 대우차 매각제안도 관심있게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93년, 세계경영카드를 꺼내들자 태도가 갑자기 180도 변해서 애지중지하기 시작해서 결국 부도전까지도 매각은 없다 입장을 고수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대우그룹부도처리후에 김우중화장은 대우차는 반드시 자신이 경영할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참.. 알수없는 사람...;;;)"

 

                                            ▲ 헬기에서 내리는 김우중회장 <97년, 본사>

            ▲ 이제 우쭈쭈 내쒸끼 대우차 사랑이 시작됩니다.
               <96년, 누비라 최종개발차(출시전 제품 최종품평회쯤으로 보시길...)를 보는 김우중회장>
 

             ▲ 결국 내새끼 사랑은 FSO(폴란드국영자동차합영법인)라는 거대회사를 인수하게 됩니다.
                그것도 형님이었던 GM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서 말입니다.
                김우중은 FSO를 인수할때 파격적 제안을 걸었습니다. 먼저 2만여명의 모든 노동자들을 5년
                동안 정규직으로 유지시켜주고 보수도 100%올리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단, 노조활동은 5년간
                자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악속은 지켜졌고 폴란드뿐만 아니라 모든 동구권에서 대우는
                최고의 회사라는 명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김우중식 격적 세계경영을 본
                영국의 한 유력일간지는 몽고가 말을타고와 유럽을 정복했듯이 김우중이 대우차를 타고 유럽에
                상륙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대서특필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막역한 사이었던 
                우즈벡 대통령은 그를 일컬어 김기츠칸이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칭기스칸+김우중)
                <97년, 폴란드 FSO-DAEWOO에서 김우중회장과 FSO-DAEWOO공장장과 함께 시찰중인 모습>

            ▲ 98년, 베네수얼라 대우자동차 대리점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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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리스 2011.04.21 0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들이 있네요.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2. tibul 2011.07.25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아쉬운 기업이자 세계의그룹,최초로 경제학을 전공한 우리경제계에 큰 발자욱을 남긴 대우,부도를 낸 이유를 무리한 차입으로 상환능력을 꼽았지만 그럼 H,S그룹을 포함한 다른 기업의 상황은 어떻고?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세계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대한 평가가 어떻게 되겠냐는 생각해봤나? 대학도 못나오고 상황에 따라 말만해대던 정권의 경제부처에서 결정했겠지만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한다. 일찌기 우리경제계에서 온세계를 시장으로 실제 그렇게 발로뛴 기업인이 있었나?회장한사람만 책임지우면 안되었나?지금도 월남등 곳곳에 대우의 혈맥이 이어지고 있다.정부가 쥐고있는 은행의 여신.무지 무능한 정권에 의해 자금을 융자받지 못하고 아쉽게 그룹이 해제되었는데 당시 경제장관과 지옥에 가있는 쩔둑바리에게 묻고싶다.그그룹해체가 올바른 판단이었는지? 아쉽다.

    • 노리스 2011.08.18 1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대우를 꼭 그렇게 죽여야 했는지..대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대우의 기술변천사가 로얄시리즈에서 모두 드러난다. (그속에서 서서히 망해가던 대우의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
초기 (1972년~1980년)
(회사변천 : GM코리아->새한->대우자동차, 차종 : 레코드시리즈->로얄시리즈, 베이스 : GM->OPEL)

이 모델이 GM코리아에서 새한자동차로 바뀌던 시절 나온 고급모델 레코드입니다.
이 모델이 로얄시리즈의 시초로 따질 수 있습니다. (시초는 시초일뿐 같은 모델로 취급하진 않겠습니다. 제목에는 78년으로 써놓고 부제엔 72년으로 써논 이유입니다.)
오펠의 레코드를 베이스로 하였습니다.
모약부터 앰블럼까지 어느하나 안빠뜨리고 들여온지라 우리나라에는 절대 맞지 않은 차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길과 궁합이 맞지 않는 낮은 저상고와 오일쇼크로 힘들던 시절에 GM특유의 낮은연비와 요란하신 품행으로 욕좀 많이드셨습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말아 드셨습니다.

음.. 이쁜디 말여...

 여하튼 레코드로 한번 말아드신 새한은 78년 현대그라나다가 출격후 대박을 치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오펠이 병주고 약주고를 실천하시련지 당시 서독 최신인기모델인 세나토와 몬자, 레코드를 만들며 우려먹기의 황제임을 과시하던 C-Car Project 베이스를 새한모더스님께 하사하려 합니다.

이에 새힌은 응용따윈 건너뛰고 그중 가장 울궈 먹기 좋아 보이는 레코드 베이스를 그대로 모셔와 조립합니다.
그리고 판매합니다.
음... 뭔가 빠졌군요...
네.. 마케팅이라는 상술을 8년만에 깨달은 다윈진화론에 입각한 새한은 진화를 시작합니다.

그래! 아거야!! 좀 있어보이는 단어를 사용하자구...!
'에어로 다이나믹스.. 어쩌구저쩌구..'
이제 좀 팔립니다... 판매를 꽤 짭짤이한 새한은 대우와 합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로얄이란 이름이 하사됩니다!!
됐어! 성공했어!!
엄마 아빠 김우중씨 나 드디어 고급차 만들었어!!!

국내 승용차 역사중 최악으로 기록됬을 미친존재감 로얄디젤...은 다음글에서... ㅋㅋㅋ

다음글에서 게속....

사진출처 : 소장, 구글
지식출처 : 내머리속, 위키백과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불펌하지 맙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댓글 써줍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광고 눌러줍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저작권 엄수 합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홍보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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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리스 2011.04.15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들이 많네요~다음 편도 기대 하겠습니다.

  2. マーチ 2014.10.20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기 레코드로얄은 말아먹기는커녕 1973년경에 경쟁모델이던 현대 포드 20M이 조기에 단종되는 바람에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사실상 시장 독점 효과를 누리며 높으신 분들의 애마로 어느정도 팔렸습니다. 포드 20M보다 차체는 작았지만 4기통 엔진이라 연비는 포드 20M 보다 좋았습니다. 게다가 코드명도 틀렸는데 오펠 레코드 계열은 C-Car가 아닌 V-Car 입니다.
    그리고 뉴 레코드 로얄은 오히려 그라나다 보다 2달 먼저 시판되었고, 뉴 레코드 로얄이 1978년 8월, 그라나다가 1978년 10월에 나왔습니다. 그라나다도 나온지 얼마 안되어서 78~79년 2차 오일쇼크 때문에 당시 장관급 관료들의 관용차들을 4기통 엔진으로 제한하는 바람에 6기통 엔진인 그라나다는 제대로 물먹어버리고, 4기통 엔진이던 새한(대우)의 로얄이 반사이익을 얻던 시절입니다.


<연평도사건 희생자분들을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시작전 헛소리.. 

더보기


1. DAEWOO NO.1 (1994년, 이탈디자인)
말할게 정말 없네요.. 그냥보시죠..

 어떤차인지 아시겠죠? 바로 라노스 입니다. 여러 컨셉트중 소프트탑 형태의 디자인도 있었습니다. 물론 출시도 할려구 했지만 대우차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바람에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뭐 이차는 놀랄만한 미래감각도, 눈이 뒤집힐만한 실내 인테리어도 없습니다. 그냥 양산직전의 테스트 버젼 같습니다.

  양산했다고 말해도 될만큼 컨셉트카 같지 않은 디자인...


2. Bucrane (1995년, 이탈디자인)
이차는 정말 말할게 많습니다.
뷔크란은 당시 대우에서 급조한 컨셉카로 유명합니다. 뭐 급조치곤 디자인이 우수합니다.

  곡선을 잘 이용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몇몇차종에서 조화를 보이지 못했던 대우만의 독특한 3분할 크롬그릴이 이차에서는 제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요상한 뚜껑은 제발 치워줬으면 좋겠습니다..

  앞쪽의 느낌은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이지만 뒤로갈수록 무언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약간 씩어설픈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제 아시겠죠? 앞면과 뒷면이 왠지 따로 노는 느낌입니다. 앞면은 매우 완성도가 높아서 칭찬해주고 싶지만 본네트 뚜껑을 지나서부터는 점점 따로놀기 시작합니다. 뭐라고 해야할까요? 짝이 안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뒷면이 정말 아쉽습니다.

 근데 또 이렇게 위에서 보면 멋집니다. 정말 요상한 차죠.. 이건 뭐 신용카드 홀로그램도 아니고 각도에 따라 왜이리 분위기가 다른지...
 
 음 괜찮은디...

으악!! 미치것네..

  이제 내부에서 급조의 흔적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 짝이 안맞는 어색한 에어컨은 어디선가 많이 본거 같죠?
바로 아카디아에서 그대로 가져온것입니다. 버튼하나 안빼고 가져왔습니다.
변속기... 물론 아카디아 껍니다.
심지어 계기판도 아카디아에서 공수해 왔습니다. 이쯤되면 공수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겠지요..
기술 없는 회사의 설움입니다. 컨셉카 하나도 만들기 힘들지요..
아참, 엔진도 아카디아껍니다.
오디오도 아카디아거냐고요? 다행이도 오디오는 아카디아가 아닌 에스페로에서 옵션으로 제공되는 CD오디오입니다.;;

역시 자동차회사의 생명은 자체기술입니다.

3. Daewoo No.2 (1995년, DWTC)

전모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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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는 매우 우수한 차량입니다. 이 차의 디자인은 멋과 실용성, 두마리의 토끼를 잡은 대우의 흔치않은 컨셉카입니다.
멋으로 보면 역시 3분할크롬그릴, 독특한 헤드라이트, 잘 뽑은 컬러, 파노라마루프등 많은요소에서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약간 안어울리는 휠과 옆면의 대우로고는 이 차의 우수함을 아쉽게도 감해주는것 같군요..
실용성으로보면 쾌적하고 탁트인 실내, 2인승 화물밴 or 5인승 패밀리밴 or 3인승 화물밴으로 바꿀 수 있는 활용성 높은 시트설계, 높은높이에도 불구하고 균형감있는 디자인으로 엔진 배치와 설계가 매우 자유롭습니다 : 하이브리드, 전기, 가솔린등 어느엔진이든 설치가 가능하고 FF, FR, AWD등 구동방식도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차체는 알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써서 경량화를 실현했고, 헤드램프는 첨단 광학섬유를 사용하고 A필러쪽으로 붙어놓은것이 특징입니다, 리어램프는 네온램프를 적용했습니다, 멋지군요...

 실내도 완성도가 매우 높고 멋집니다. 블루라이트를 사용하여 실내가 미래적으로 보입니다. 라디오 볼륨버튼 같이 생긴 멋진 변속레버, 미래형계기판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색채도 적절히 조화롭게 보입니다.
하지만 아쉬운점은 오래동안 보면 눈빠질거 같은 계기판 밝기와 실용성이 의문인 에어컨구멍. 좀만 다듬어서 지금이라도 출시하면 대박날거 같군요..

  문짝이 열려있어도 No.2는 이름처럼 시크한 매력을 유지합니다.ㅋㅋ

 배기구와 램프가 일체되어서 매우 깔끔합니다. 넓은 뒷유리는 주차시 매우 좋을거 같습니다. 번호판위 플라스틱의 재질만 높였으면 좋겠군요..


2편에서 계속... 다음글은 기아 콩코드(or 구형프라이드)

댓글진심매우매우환영합니다...
가시기전 꼬옥 view버튼 눌러주세요 <가입필요없음. 누르면 끝~!>

 
저작권을 엄수합시다.
연평도사건 희생자분들을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자료출처 : http://autowp.ru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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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맵시나는 망한 모델인 제미니를 성공적으로 재생시킨 한국형 월드카였다.

 맵시나 광고 (1984년)

주저리주저리 막 썼어도 잘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댓글도 많이좀 달아주세요ㅠㅠ... (기왕이면 광고클릭도;;)


이시기에 나온 대부분의 대우차는 오펠에서 베이스를 가져와 엔진크기를 줄여서 조립한 차이다. 엔진크기를 줄인 이유는 우리나라 세제에 맞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로얄프린스에 1500cc엔진이 달린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뭐 스텔라도 그런데 세삼스럽게 놀라긴..;;;)
맵시나는 맵시의 후속이라는 뜻이다. 즉 가나다순을 생각하면 된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맵시나 이야기를 해보자.

맵시나는 74년 데뷔한 3세대 오펠 카데트가 아버지다. 오펠 카데트는 GM이 처음 월드카로 만든 차였다.(르망도 월드카였다).
월드카란 하나의 차종으로 세계 여러 곳에 공통되게 팔리는 모델을 말한다. 플랫폼은 물론 바디도 공유하고, 부품을 공동구매하여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이 월드카의 최대 목적이다. 즉 여러나라의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아나라 본사에서 하나의 모델을 개발하면 여러나라에서 그 베이스모델을 가져다 조립해 독자 브렌드를 붙어서 파는 것이다.

월드카의 대표적인 모델인 오펠 카데트의 해치백 스타일은 미국에서 시보레 쉐벳으로 만들어지고, 일본에서는 노치백 스타일의 이스즈 제미니로 나왔다. 현대 포니에 맞설 차가 필요했던 새한자동차(후에 대우자동차로 바뀜)는 77년 이스즈 제미니 모델을 들여와 판매를 개시했다. 당시 첨단 감각의 포니에 맞설 차로 1400cc 독일차의 피가 흐르는 제미니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듯했다. 그러나 고장이 잦고 연료소모가 커 포니의 독주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엔진은 전 모델 카미나의 것이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전세계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월드카는 전세계인의 불만을 산 싸구려 자동차로 전락한다. 한 곳의 취향에 맞추기 위한 노력은 다른 곳의 불만을 가져왔다. 마치 끝없이 자라는 잡초 같이. 그리고 싸게 구입한 부품을 필요한 지역으로 나르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GM의 1차 월드카 전략은 실패한다.

결국 제미니는 대우의 뛰어난 재탕기술력을 바탕으로 82년 초 맵시로 이름을 바꾸며 프론트 그릴을 슬랜드하게 손질했다. 억지에 가까운 변화가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플라스틱 사출이 흐느적거리는 그릴과 사각 헤드램프의 처리가 엉성했다. 독일에서는 이미 다음 세대 카데트가 나온 뒤였다. 한마디로 구형을 허접한 기술로 조립해 허접한 차로 만든것이다.

그리하여 재탕 맵시는 3탕과정을 밟어 83년 다시 맵시나로 바뀌고, 85년 초에는 4탕 맵시나 하이 디럭스 모델이 나왔다. 근데 재탕 맵시는 맛있게 말아먹었지만 3,4탕인 맵시나는 달랐다. 이 차는 당시 대우의 최고급 차량이었던 로얄 살롱을 축소한 모양으로 작은 차에 최고의 사치를 담았다. 독일과 일본에서는 사라진 모델이 한국에서는 크고 화려한 차로 탈바꿈한것이다. 월드카가 변신해 한국화한 결과가 맵시나이다. 85년 현대는 포니엑셀&프레스토로 미국과 한국에서 짭짤한 돈맛을 보고 있었다.
월드카의 산산조각난 잔해를 모아 만든 차 맵시나 하이 디럭스는 초탕 제미니의 최후의 엑기스였다. 그리고 그 최후의 엑기스는 대우가 80년대 고급승용차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도록 도와준 쓰디쓴 눈물의 엑기스였다.

 맵시나 디럭스는 86년 르망이 나올 때까지 대략 2만 대 정도 만들어졌다. 놀라지 말기를... 후속차량은 르망이다.;;

      *광고&사진 콜렉션*

      전형적인 80년대 광고군요...

                 이제는 거리가 아닌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맵시나의 84마력 V6 XQ엔진은 일상적인 드라이빙에 이상적이다.

                        어디선가 제미니의 냄새가...

                        당시 자동차 산업의 한계는 엔진과 실내 마감도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역시 맵시나도 실내
                       플라스틱마감도를 직접보면 실망을 금치 못한다.

                       왕관마크가 고급승용차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짝반짝 크롬~

                       번호판등이 왜 4개일까요??

                        앗! 휠에는 대우마크네요;;; 왕관 빠싱~

                       사진빨 먹여주기위한 커튼처리...

     죄다 하이디럭스 모델이네요;;;

          요놈도;;

      너마저 하이디럭스;;;

      그나마 옆에 있는 맵시나 원형...
  


      베이스가된 맵시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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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를 비웃지 말아라.


 대우 티코 광고 (1991)

TICO = Tiny + Tight + Convenient + Cozy (해석은;;;;)

티코를 흔히들 대우자동차에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말이다. 티코는 대우조선(지금의 대우조선해양)산하 대우국민차에서 만든 차이다. (뭐 구지 따질필요 없지만;;; 다 대우그룹인데...)
대우조선은 정부의 국민차 계획하에 1989년즈음에 대우조선이 일본 스즈키와 계약을 맺는다.
티코는 스즈키의 유명 경승용차 모델인  알토(Alto)를 베이스로 개발한 개량 버젼이라고 보면 된다.
티코를 몰아본 분들중 몇몇은 속도가 꽤 괜찮게 나온다는 느낌을 받아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이유는 스즈키 알토가 일본 경차규격에 맞추기 위해 600cc에 최적화하여 만들었는데, 티코는 여기에 약간 모자라보이는 직렬 3기통 657cc 엔진을 빼고 직렬 3기통 796cc엔진을 얹었다. 그래서 티코가 경차치고 가볍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파워핸들 땜시 가볍게 몰진 못했다;;; 힘들다..)
여하튼 마침내 티코는 1991년 창원 대우국민차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한다.
출시 당시 국민소득의 가파른 성장으로 거세게 불던 마이카 열풍에 힘입어 인기를 끌었다. 물론 부담없는 가격과 연비가 판매에 한몫 했다. (당시 가격으로 319만원 부터 시작되었다.)
티코로 인해 한국의 경차 시장이 서서히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힘입어 정부의 국민차 보급 추진 계획으로 고속도로 통행비 50% 감면혜택 외 많은 세제 혜택등이 팍팍스즈 주어져서 큰 인기를 끌었다.

티코도 단점을 피할순 없겠죠.. 그럼 단점을 따져 봅시다.

더보기


자이제 전설속의 티코이야기를 해보자... (진짜가능한일만 과대포장해서 적었습니다.)

더보기

변속기는 3단 자동과 5단 수동이 있었고 1998년 5단 수동변속기를 바탕으로 개발된 세미오토 변속기가 추가 됬습니다.
티코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저개발국가의 엔트리카로도 인기를 끌어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폴란드의 대우 현지공장에서도 생산되었습니다. (동구권 분들은 대우를 너무사랑하죠.. 특히 씨에로는 동구권에서 벤츠 다음으로 고장 안나는 차로 유명;;)
우리나라에서 생산 및 판매는 2000년에 마지막 모델을 만들고 2001년에 생산이 중단되어서 역사속으로 증발됩니다..

요즘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걸 보면 우리동네에 그많던 티코들이 저 멀리 페루등지로 순간이동 했더군요/// 그래도 버려지지 않고 다른나라에서 사랑받는 모습을 보니 정말 다행입니다..

사진쇼&사양

           초기형인거같군요..

     초기형티코

      95년형 티코

     후반대에 나온 티코 기본형

      동구권수출용

     2000년형 최고급형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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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국민 중형차라 불릴만한 최고의 베스트 셀링카였다. 매우 딸리는 엔진만 빼면 말이지...;;



소개영상 (1983년) (출력이낮습니다.)


현대 스텔라는 1983년부터 1997년(일반승용차는1991년까지 생산됨)까지 현대자동차에서 생산된 후륜구동의 중형승용차입니다. 스텔라는 당시 중형자동차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대우자동차의 로얄시리즈에 맞서기 위하여 탄생하였습니다. 스텔라는 포드 코티나의 샤시를 이용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현대 최초의 고유모델입니다. 디자인은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맡았습니다.
스텔라를 바탕으로 소나타(Y1)가 탄생했습니다(1987년 쏘나타가 풀체인지되면서 스텔라 GXL로 개명되어 1991년까지 팔렸습니다.)
1983년 당시의 국산차는 모두 수동변속기 그것도 4단에 불과했고, 자동변속기 차량은 거의 전무했습니다.(포니오토가거의유일..) 스텔라는 바로 이점을 노려 국산 자동차 최초의 5단변속기차량이라고 자랑하는 광고를 하여 동력성능 면에서 월등함을 강조했습니다.(포니엔진에 5단변속기;;;) 이런 점 때문에 인기를 얻은 스텔라는 입소문을 타고 마침내 엄청난 판매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당시 월 판매량이 2,000여대 였는데 이는 80년대 당시 국산자동차 시장기준으로 보면 매우 큰 숫자였다. 요즈음으로 치면 쏘나타가 매달 10000여대 판매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배우 금보라나 안성기도 스텔라를 뽑았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잘나가던 스텔라에 큰문제가 생기었습니다. 차량 배선 문제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결국 스텔라의 판매는 곤두박질을 치고 맙니다. 그러자, 현대는 스텔라를 1.5엔진으로 단일화해, 판매량을 다시 끌어올리게 됩니다.
1985년에는 5마일 범퍼를 장착하고 모켓시트를 채용한 캐나다 수출용모델인 CXL(Canada eXported Limited)모델을 출시합니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 공식차량(스텔라88)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변속기는 미쯔비시 제품을 썼습니다. 엔진은 1986년까지 포니2에 사용되던, 1.4와 1.6엔진을 썼다.(이래서 스텔라가 힘이 안습이라고 햇었음;;; 크기는 소나타인데 엔진은 포니;;;) 그뒤인 1987년에 2.0이 더해졌다. 이 2.0L엔진이 그 유명한 4G63엔진(일명 시리우스 엔진)이다. 미쯔비시에서도 시리우스엔진을 9세대 란에보가 생산될때까지 달 정도로 내구성이 좋았다고 합니다. 자가용은 1992년에, 택시용은 1997년에 단종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됩니다.

*광고와사진

스텔라 광고 (1983년)(소리출력이약간높습니다.)


스텔라프리마 (1984년) 골든팩이 유명했었죠..

     요놈이 당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오토자동차인 포니오토매틱. 그다지 잘팔리지는 못했다.

                          프리마는 새로워진 그릴과 크롬장식, 그리고 그 유명한 골든팩이 적용되어 화제가 되었던 모델이다.
 
     1400cc엔진을 얹은 스텔라 프리마E, 경제성을 강조했던 모델이다.

     안성기씨도 스텔라를 탔었다.

     5마일범퍼등 캐나다 수출용에만 있던 기능을 달고 나왔던 유명인사 스텔라CXL

 
'카나다 수출형 스텔라 CXL!' 광고 (1985년)

     스텔라중 제일 싼 모델이었던 스텔라GX

     초기 쏘나타(Y1)는 스텔라를 가져다가 옵션만 추가시킨 것이었다.

                                1.8MPi엔진을 얹어서 힘을 향상시켰던 스텔라1.8i

     스텔라 프리마



                                     
                                      영국잡지에도 소개된 스텔라.

                                      다이하쯔,타보트사의 동급차량과 비교


                                          영국 책자.

                                           





                                            so much car you'll hardly believe the price.

                       내부



                       멋진 흑백사진.

                                       영국광고


 
영국광고 (1984년) (여러 잡광고가 셖여있습니다.)

                    

                                 스텔라 CXL

                       택시용 스텔라 1991년)

           스텔라는 원래 로얄왕국과 맞써기위해 탄생하였지만 어쩌다가 패밀리 세단이 되버렸다..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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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로는 디자인면에서 당시 경쟁차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그러나 고질적인 대우병(부실한마무리, 딸리는힘)이 이차의 좋은점까지 묻어버렸다.-


에스페로 광고(1990년)


에스페로(Espero)라는 뜻은 '희망한다, 기대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스페인어입니다. 이차는 대우가 쏘나타를 앞지르기위한 희망이자 기대작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현대자동차에게 중형승용차 시장을 빼앗기자 대우자동차는 위기 의식을 느꼈습니다. 1986년 개발을 시작해 4년이 조금지난 1990년 9월, 양산을 시작했습니다.
에스페로는 대우자동차에서 컨셉과 이미지를 정하고 베르토네사에 파견한 디자이너와 설계자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한 첫 독자모델이었습니다.
배기량 2,000cc의 다이나믹 스타일을 지닌 중형세단으로써 미래적인 날렵한 유럽형 스타일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 르망과 로얄시리즈의 중간 사이즈를 가진 모델이 필요했던 대우자동차는 '에스페로'에 큰기대를 했다.

디자인

당시 한국자동차시장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디자인이었습니다. 과감히 라지에이터그릴을 삭제하였습니다.(1세대 아반떼도 라지에이터그릴이 없었다.) 앞과 옆, 그리고 뒷유리로 이어지는 C필러 부분을 유리재질로 감싸 날렵한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풍겼다. (그러나 당시 국내기술의 한계가 디자인 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스타일을 다듬고 후방 시야를 넓히기 위하여 '6-윈도우'를 채택하였지만 뒷부분 도어 유리에 분할 바를 넣었습니다. 이 분할바는 에스페로의 디자인에 흠집을 주었다.)
여러가지 종류의 충돌사고로부터의 탑승자의 안전을 확보해주는 랩어라운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으며 차체의 라인이 매끈하게 잘 처리되었습니다. 또한 넓은 실내공간을 확보(당시 동급차종중 최대축간거리를 자랑함)하여서 실내 쾌적성이 높았다.
차량 범퍼 아래쪽에 커다란 에어땜(차량 하체에서 생기는 소용돌이를 억제해주는 역할)을 설치하여 공기역학적부분에서 뛰어난 성능을 냈습니다.(에스페로공기저항계수 : cd 0.29) 송풍구를 도어트림 쪽에 달고 도어 열림장치를 수평방향이 아닌 수직방향으로 설계하였습니다.
대우자동차의 전통대로 트렁크를 넓게 설계했다. 그리고 뛰어난 승차감과 주행성능으로 호평 받은 르망의 앞 스트롯, 뒤 콤파운트 링크 서스펜션을 그대로 이용했습니다. 르망의 휠베이스를 조금 넓혀 플랫폼을 완성해 개발비를 크게 줄였습니다.(자동차 휠베이스의 재활용??) 

초년

초기 에스페로는 르망에 쓰이고 있었던 2000cc 100마력 엔진이었다. 2000cc 엔진을 얹고 1세대 에스페로가 1990년 출시하였지만 엘란트라로 1500cc급 준중형차 시장이 형성되면서 크기는 쏘나타보다 작으면서 2000cc의 엔진을 얹은 에스페로의 위치가 모호해졌습니다.(쏘나타 + 엘란트라;;; = 안습//) 이로 인해 선보인 지 얼마 되지 않아 판매부진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중년&말년

대우자동차는 판매부진에 시달리던 에스페로에게 1991년 2월 독자개발한 1.5 DOHC, 100마력짜리 엔진을 하사 하였습니다. 이 엔진은 영국의 유명한 스포츠카 제조업체인 로터스사(나중에 기아에서 스포츠카인 엘란을 출시했는데 그모델을 만든회사가 로터스임)의 자문을 받아 설계되었습니다. 이 엔진은 중·저속 RPM 구간에서 최대토크를 발휘하도록 셋팅해 한국실정에 맞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대우자동차가 처음으로 독자개발한 1.5DOHC 엔진은 초기에 많은 취약점을 드러냈습니다. 고속 주행성능은 동급 차량들에 비해 떨어졌으며 부품의 정밀도가 떨어져 엔진오일이 새거나 노킹 현상을 보이는 차가 많았고 급가속 때 소음과 진동이 심하였습니다. 훗날 이 문제점은 해결되었으나 결국 에스페로의 이미지에 흠집을 주고 말았습니다. 

에스페로의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당시 대우는 과감한 마케팅 전략을 펼칩니다. 전국에서 모집한 품질평가단 100명에게 에스페로를 한대씩 빌려주고 달라진 대우자동차를 직접 느껴보라는 '에스페로 품질평가단' 을 펼쳐 판매증진에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마케팅 전략은 유럽시장 진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로인해 에스페로는 드디어 선진국인 영국에 1995년 상륙합니다.

탑기어-대우자동차 (1997년)(탑기어가 무슨 프로인지는 알거라고 믿음)

가격부터 성능까지 자랑할거 없던 안습 대우자동차는 1991년 11월 태일램프를 콤비네이션(피자아님..) 타입으로 교체하고 시트의 재질을 고급으로 높인 92년형 에스페로를 선보이고, 1993년 4월 라디오안테나와 휠 디자인이 변형되었고 이전에 있었던 2.0L, 1.5L 엔진 모델에 1.5L MPFi 90마력 모델이 추가된 새 에스페로를 선보였습니다.

에스페로는 1990년 9월에 탄생하여 1997년 12월까지 54만6천520대가 생산, 이 가운데 23만6천882대가 해외로 수출되었습니다. 에스페로는 90년대 대한민국 중형차 시장 역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대한민국 시장에서는 '비교적 싼값에 중형차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차'로 인기를 모았고 해외시장에서는 같은가격에 동급 차량들 보다 편의장비가 풍부하고 차체가 중후함이 좋은 차로 평가받았습니다.(그러나 5년뒤 에스페로는 외국에서 안습혹평을 받습니다;;; 역시 문제점은 나중에 드러나는듯... 그래도 개발도상국에서 에스페로가 아직까지는 잘 굴러다님...)

*사진, 비디오*

      에스페로~~~

                                1세대 뒷태

              1.5 DOHC모델 국산차는 이때쯤부터 엔진룸이 꽉차기 시작했다.
  
     2세대 앞

                          2세대 뒤
 
      2세대 옆

      탄생 에스페로!

           대우의 상징, 전자계기판!

      1세대 앞

      요놈도 1세대

      아바떼도 라지에이터그릴이 없다.

      대우 품질평가단, 지상비행광고(탑건의 주제가가 들어가서 화제가 된 광고!)


 
 광고 (1991년) 


지상비행편 (1991년)


 광고 (1991년)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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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굴탐험 2010.11.15 1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사회 첫 차였던지라 관심.....
    그리고 아직도 내 맘속 1순위로 있는 차라 관심있네요.
    정확히는 대우자동차가 GM과 분리후, 홀로서기과정에서 나온 차죠.
    르망의 차체와 파워트레인 등 여러모로 완결성에 아쉬움이 있을 수 있으나, 디자인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잠재울 수 있는... (물론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아직도 인상적인 것은 낮은 차체, 시트포지션... 엘란트라와 좁은 길에 마주치면 사이드 미러가 부딪치지 않습니다. 그만큼 낮다는 거죠. 직경이 적은 스트이링 휠, 파격적인 실내 디자인. 센터페시아는 약간 아쉽지만.... 베르토네 최고 작품중의 하나가 아닐지...

    • 어쩡이 2010.11.27 2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요. 베르토네의 역작중 하나로 뽑고 싶네요. 대우의 기술력이 뒷받침 되었다면 최고의 명작이었겠지요..
      그래도 보수적경향이 강한 한국시장에 이런 파격적인차를 선보임으로써 한국인들의 차고르기 기준을 업그레이드 했다는 점은 정말 칭찬하고 싶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타의추종을 불허한 미래형 고성능 소형승용차
 


대우자동차 르망 광고(1986년)

르망의 등장은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 혁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그혁명적인 모델은 디자인, 성능면에서 다른차들에 비해서 조금도 뒤지지않았습니다. (언제나 대우는 그랬다. 왜냐하면 해외시장에서 검증된 모델을 들여와 조립 생산했기 때문이다.;;;)
르망의 기본모델은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오펠의 카데트입니다. 카데트를 만든 오펠은 다소 복잡한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펠은 미국의 유명 자동차 회사인 GM의 자회사입나다. 그중 소형차 기술지원 및 엔진을 일본 이스즈(ISUZU, 트럭으로도 유명한 일본의 자동차 회사)에서 지원 받았습니다. GM이 이스즈에서 지원을 받은 이유는 GM이 주로 대형차만을 생산해서 소형차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잠깐! 오펠이 무슨회사인지 궁금하시다면 더보기를 눌러주세요^^

더보기


1986년 GM, 오펠, 대우는 '독일 오펠차를 대우가 생산, 판매는 GM의 폰티액이 맡는다'는 월드카 프로젝트를 수립합니다. 그래서 위에서보신 르망 광고에서 월드카라고 떠든것입니다. (참고로 미국에서 팔던 폰티액 르망도 우리나라에서 보던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르망의 베이스 모델인 오펠의 카데트

르망의 베이스모델인 오펠 카데트는 배기량 1.6ℓ과 2.0ℓ이 주를 이룹니다. 1.6ℓ모델이 카데트의 기본모델 입니다. 대우는 카테트의 기본모델 라인을 도입하여 르망을 생산하기로 하였으나 1.6ℓ엔진은 국내 세제상 불리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대우는 국내 실정에 맞게 엔진의 실린더 보어를 약간 줄이는 손질을 가해 86년 7월 1.5ℓ엔진의 르망을 내놓았다.
디자인에서 르망은 여태까지 우리나라에서 보던 포니, 제미니(1977년 출시된 대우의 소형차)와 전혀다른 혁신적인 모냥새였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존에 국내 차들에서는 언급도 못하던 공기 저항계수를 논할정도로 디자인면에서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공기저항계수: cd0.32) (이전의 국산차들은 한결같은 박스같은 모냥이어서 공기 저항계수라는 것을 언급도 못하였다.)

르망스펙
  • 길이 4,394mm, 너비 1,663mm, 높이 1,362mm, 1,498cc 89마력의 수랭식 직렬 4기통 전자제어 점화장치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최고시속은 170km 이었습니다.
  • 전자식 점화장치를 쓴 카뷰레이터 엔진의 1세대에 이어 88년 9월에는 미국 수출용에 장착하였던 직접분사방식의 TBi엔진을 얹어 2세대 르망시대를 열었습니다. (당시 전자장치가 들어갔다는 광고를 보고 초딩들이 르망이 전격Z작전에 나온 키트처럼 말한다고 하기도 했었다... 옅은지식;;;;)

91년 2월에는 양산차로는 처음으로 튜닝파츠를 쓴 르망 이름셔 모델을 내놓아 카매니아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지난글을 참고 하시길...)

1997년 2월 단종될 때까지 100만대가 넘게 생산되었습니다.


르망 사진과 광고...

      르망1세대

                      "어떤 르망을 원하십니까?"

      르망1세대 (이제품은 미국에서 팔던 폰티악 르망과 같은모델)

      88년 9월에 미국 수출용에 장착하였던 직접분사방식의 TBi엔진을 얹은 2세대 르망 출시.

     2세대르망 내부. 전자계기판이 매우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차중하나인 르망GSi(1989년)

 
르망GSi광고 (1989년)


      3세대 르망

      악! 전자계기판은 어디로?!!!!

      3세대 뒷태

     경쟁차종이었던 현대 포니엑셀, 프레스토

기왕오신거댓글좀써주세요..... 사진과글은 눈으로만...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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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르릉 2011.03.29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위 사진중 오펠 카데트라고 적은 모델은 오펠 레코드 같습니다.

    • 어쩡이 2011.03.31 1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펠이 팔던차들은 하나같이 이름에 복잡합니다. 독일에서 팔던모델은 레코드, 남미쪽과 한국에서 팔던 동일차종의 이름은 로얄레코드, 프랑스와 일부 유럽국가에선 카데트라는 이름으로 팔렸습니다. GM월드카계획이 낳은 난해한결과죠;;;^^

  2. 체리QQ 2011.05.29 0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위에 사진에 있는 오펠 카데트는 확실히 대우 로얄시리즈의 모체 레코드네요. 앞모습과 옆모습이 국내출시 모델인 대우 로얄프린스와 동일합니다.
    오펠 카데트는 1세대 르망과 판박이죠.

  3. 체리QQ 2011.05.29 0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고하시라고 남겨봅니다.
    http://www.opel-kadett.com/gallery/1987/opel-kadett-e-photo-large.html

  4. Rudedog 2012.02.04 1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데트 모델은 맞는데 르망이 베이스로한 카데트의 전모델이네요,


너무 현대차 위주로 글을 올리는거 같아서 대우차를 써봅니다.


이차는 90년도에 출시되었던 르망 이름셔입니다. (앞의 헤드라이트가 포니1에서도 보았던 두쌍의 땡글이 입니다. 일반 르망과는 좀 다르게 생겼죠??)


이차는 갠적으로 좋아하는 올드카중 하나인 르망 GSI(1989년) (어 땡글이 해드라이트가 없네;;; )

범퍼가 형상기억물질로 되어 있어서 당시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형상기억물질이란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지식인에서 찾아 봤습니다

변형을 시켜도 일정한 기온이 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부드럽게 구부리거나 힘을 빼면 원래의형태로 돌아간다.



 르망은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디자인, 성능면에서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근데 르망도 그냥 우리가 길에서 보던 놈이 아닌 레어템 르망레이서입니다.

여기서 잠깐 르망은 뉴구??? 인지 알고 싶으면 더보기를 꾹 눌러주세요^^

더보기


89년 스쿠프가 출시되었습니다. 스쿠프는 광고에서 '이제 스쿠프를 넘으려면 날개를 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우의 입장에선 이러다가 고성능 마니아차 시장도 뺏길판이었습니다.
 
시장점유를 향한 불타는 열정의 대우는 르망의 스페셜버젼을 시장에 투입시키는데 그 차가 바로 90년 5월에 등장한 르망 이름셔입니다.
출시 후 대우는 현대에 대한 복수전을 준비 했다는 듯이 이런 광고를 냈습니다. '이제 르망은 날개를 달았다.'


이 차는 이름셔의 에어로퍼츠로 꾸미고, 2.0L엔진을 올려 소형차세계에서는 거의 스포츠카급이었습니다.

단거리 기어비가 아닌 유럽셋팅을 그대로 가져온 롱스트로크의 기어비 셋팅등 대우차는 유럽형 이라고 각인시켜준 장본인 중 하나가 이름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외에도 로얄시리즈, 유럽풍 외관의 맵시나 [특히 하이디럭스 모델][맵시아님!]도 많은 공헌(?)을 함)

  • 국내 최초로 조수석 운전석 버켓 시트 장착.
  • 서스펜션은 포르쉐에서 주문 제작했다.(인테넷을 통해 알게됨.. 놀랐음)
  • 그 당시 최고속도인 185Km.(위에서 말하였던 일반 르망보다 더빠르다.)

그러나 다른 중소형 차량들에 비해 너무 비싼 가격, 한정판(사실 잘 팔려야 정상이지만..)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판매부진이 심했던 비운의 자동차입니다.

그래도 타 회사들이 대중성만을 따져 이익에 맞게 제작되던 습관을 벗어나 스포츠카를 꿈꾸게 했던 차이기에 대우는 언제나 내맘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런차를 출시하게한 당시 대우차 사장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동차란 시대의 유행, 회사의 이득을 따르는 것 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동차시장의 다양화와 선진화를 위해 힘쓰고 시장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르망이 잘 보여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p.s. 저번 포니쿠페글이 제가봐도 넘 재미없는거 같아서 이번엔 좀 다르게 써봣어요... 그리고 다음편은 르망 쓸께요...

    <인제 고딩이어서 글쓸 시간이 적습니다. 비정기적으로라도 글을 꼭쓰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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