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연재니깐 간단하게 맛보기글부터 들어가겠습니다..


망자의 한이라고 해야할까?

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세계경영이란 슬로건하에 공격적 M&A와 공격적 외채도입경영으로 특히 동구권과 개발도상국에서 매일 그기세를 높여가던 대우그룹이란 회사가 있었습니다.

                                   ▲ 99년말 대우는 20개가 넘는 자회사(하청업체, 부서제외)를
                                       거느린 명실상부 재계1위 회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우는
                                       안내판에 써있는 회사들중 '주식회사 대우' (옛 대우실업)를
                                       제외한 모든 회사는 M&A 승리의 전리품이었습니다.
                                       <98년, 대우빌딩입구에 붙어있던 안내판>


리고 대우자동차가 있었습니다.

▲ 93년, 대우자동차는 이렇다 할 모델없는 업계꼴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아시아, 쌍용자동차 제외)
현대가 80년대 자체기술개발에 매진할동안 대우는 그냥 오펠에서 레코드하고 홀덴에서 코모도어 들여와서 로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팔았으니 이런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우가 당시 꺼내든 카드였던 세계경영의 일환으로 대우자동차에도 김우중의 손이 미치기 시작합니다.
<93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홍보전시관내>

"몇몇 사람들말에 의하면 김우중회장은 세계경영카드를 꺼내기전까지만하도 대우차계열에는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르망이 히트쳐도 로얄이 히트쳐도 점점 몰락해가던 시기에도 별관심이 없었고 그 이유로 92년까지 GM과의 합작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귀찮아서?) 그리고 가끔 GM의 대우차 매각제안도 관심있게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93년, 세계경영카드를 꺼내들자 태도가 갑자기 180도 변해서 애지중지하기 시작해서 결국 부도전까지도 매각은 없다 입장을 고수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대우그룹부도처리후에 김우중화장은 대우차는 반드시 자신이 경영할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참.. 알수없는 사람...;;;)"

 

                                            ▲ 헬기에서 내리는 김우중회장 <97년, 본사>

            ▲ 이제 우쭈쭈 내쒸끼 대우차 사랑이 시작됩니다.
               <96년, 누비라 최종개발차(출시전 제품 최종품평회쯤으로 보시길...)를 보는 김우중회장>
 

             ▲ 결국 내새끼 사랑은 FSO(폴란드국영자동차합영법인)라는 거대회사를 인수하게 됩니다.
                그것도 형님이었던 GM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서 말입니다.
                김우중은 FSO를 인수할때 파격적 제안을 걸었습니다. 먼저 2만여명의 모든 노동자들을 5년
                동안 정규직으로 유지시켜주고 보수도 100%올리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단, 노조활동은 5년간
                자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악속은 지켜졌고 폴란드뿐만 아니라 모든 동구권에서 대우는
                최고의 회사라는 명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김우중식 격적 세계경영을 본
                영국의 한 유력일간지는 몽고가 말을타고와 유럽을 정복했듯이 김우중이 대우차를 타고 유럽에
                상륙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대서특필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막역한 사이었던 
                우즈벡 대통령은 그를 일컬어 김기츠칸이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칭기스칸+김우중)
                <97년, 폴란드 FSO-DAEWOO에서 김우중회장과 FSO-DAEWOO공장장과 함께 시찰중인 모습>

            ▲ 98년, 베네수얼라 대우자동차 대리점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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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리스 2011.04.21 0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들이 있네요.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2. tibul 2011.07.25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아쉬운 기업이자 세계의그룹,최초로 경제학을 전공한 우리경제계에 큰 발자욱을 남긴 대우,부도를 낸 이유를 무리한 차입으로 상환능력을 꼽았지만 그럼 H,S그룹을 포함한 다른 기업의 상황은 어떻고?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세계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대한 평가가 어떻게 되겠냐는 생각해봤나? 대학도 못나오고 상황에 따라 말만해대던 정권의 경제부처에서 결정했겠지만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한다. 일찌기 우리경제계에서 온세계를 시장으로 실제 그렇게 발로뛴 기업인이 있었나?회장한사람만 책임지우면 안되었나?지금도 월남등 곳곳에 대우의 혈맥이 이어지고 있다.정부가 쥐고있는 은행의 여신.무지 무능한 정권에 의해 자금을 융자받지 못하고 아쉽게 그룹이 해제되었는데 당시 경제장관과 지옥에 가있는 쩔둑바리에게 묻고싶다.그그룹해체가 올바른 판단이었는지? 아쉽다.

    • 노리스 2011.08.18 1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대우를 꼭 그렇게 죽여야 했는지..대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대우의 기술변천사가 로얄시리즈에서 모두 드러난다. (그속에서 서서히 망해가던 대우의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
초기 (1972년~1980년)
(회사변천 : GM코리아->새한->대우자동차, 차종 : 레코드시리즈->로얄시리즈, 베이스 : GM->OPEL)

이 모델이 GM코리아에서 새한자동차로 바뀌던 시절 나온 고급모델 레코드입니다.
이 모델이 로얄시리즈의 시초로 따질 수 있습니다. (시초는 시초일뿐 같은 모델로 취급하진 않겠습니다. 제목에는 78년으로 써놓고 부제엔 72년으로 써논 이유입니다.)
오펠의 레코드를 베이스로 하였습니다.
모약부터 앰블럼까지 어느하나 안빠뜨리고 들여온지라 우리나라에는 절대 맞지 않은 차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길과 궁합이 맞지 않는 낮은 저상고와 오일쇼크로 힘들던 시절에 GM특유의 낮은연비와 요란하신 품행으로 욕좀 많이드셨습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말아 드셨습니다.

음.. 이쁜디 말여...

 여하튼 레코드로 한번 말아드신 새한은 78년 현대그라나다가 출격후 대박을 치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오펠이 병주고 약주고를 실천하시련지 당시 서독 최신인기모델인 세나토와 몬자, 레코드를 만들며 우려먹기의 황제임을 과시하던 C-Car Project 베이스를 새한모더스님께 하사하려 합니다.

이에 새힌은 응용따윈 건너뛰고 그중 가장 울궈 먹기 좋아 보이는 레코드 베이스를 그대로 모셔와 조립합니다.
그리고 판매합니다.
음... 뭔가 빠졌군요...
네.. 마케팅이라는 상술을 8년만에 깨달은 다윈진화론에 입각한 새한은 진화를 시작합니다.

그래! 아거야!! 좀 있어보이는 단어를 사용하자구...!
'에어로 다이나믹스.. 어쩌구저쩌구..'
이제 좀 팔립니다... 판매를 꽤 짭짤이한 새한은 대우와 합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로얄이란 이름이 하사됩니다!!
됐어! 성공했어!!
엄마 아빠 김우중씨 나 드디어 고급차 만들었어!!!

국내 승용차 역사중 최악으로 기록됬을 미친존재감 로얄디젤...은 다음글에서... ㅋㅋㅋ

다음글에서 게속....

사진출처 : 소장, 구글
지식출처 : 내머리속, 위키백과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불펌하지 맙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댓글 써줍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광고 눌러줍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저작권 엄수 합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홍보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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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리스 2011.04.15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들이 많네요~다음 편도 기대 하겠습니다.

  2. マーチ 2014.10.20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기 레코드로얄은 말아먹기는커녕 1973년경에 경쟁모델이던 현대 포드 20M이 조기에 단종되는 바람에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사실상 시장 독점 효과를 누리며 높으신 분들의 애마로 어느정도 팔렸습니다. 포드 20M보다 차체는 작았지만 4기통 엔진이라 연비는 포드 20M 보다 좋았습니다. 게다가 코드명도 틀렸는데 오펠 레코드 계열은 C-Car가 아닌 V-Car 입니다.
    그리고 뉴 레코드 로얄은 오히려 그라나다 보다 2달 먼저 시판되었고, 뉴 레코드 로얄이 1978년 8월, 그라나다가 1978년 10월에 나왔습니다. 그라나다도 나온지 얼마 안되어서 78~79년 2차 오일쇼크 때문에 당시 장관급 관료들의 관용차들을 4기통 엔진으로 제한하는 바람에 6기통 엔진인 그라나다는 제대로 물먹어버리고, 4기통 엔진이던 새한(대우)의 로얄이 반사이익을 얻던 시절입니다.


티코를 비웃지 말아라.


 대우 티코 광고 (1991)

TICO = Tiny + Tight + Convenient + Cozy (해석은;;;;)

티코를 흔히들 대우자동차에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말이다. 티코는 대우조선(지금의 대우조선해양)산하 대우국민차에서 만든 차이다. (뭐 구지 따질필요 없지만;;; 다 대우그룹인데...)
대우조선은 정부의 국민차 계획하에 1989년즈음에 대우조선이 일본 스즈키와 계약을 맺는다.
티코는 스즈키의 유명 경승용차 모델인  알토(Alto)를 베이스로 개발한 개량 버젼이라고 보면 된다.
티코를 몰아본 분들중 몇몇은 속도가 꽤 괜찮게 나온다는 느낌을 받아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이유는 스즈키 알토가 일본 경차규격에 맞추기 위해 600cc에 최적화하여 만들었는데, 티코는 여기에 약간 모자라보이는 직렬 3기통 657cc 엔진을 빼고 직렬 3기통 796cc엔진을 얹었다. 그래서 티코가 경차치고 가볍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파워핸들 땜시 가볍게 몰진 못했다;;; 힘들다..)
여하튼 마침내 티코는 1991년 창원 대우국민차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한다.
출시 당시 국민소득의 가파른 성장으로 거세게 불던 마이카 열풍에 힘입어 인기를 끌었다. 물론 부담없는 가격과 연비가 판매에 한몫 했다. (당시 가격으로 319만원 부터 시작되었다.)
티코로 인해 한국의 경차 시장이 서서히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힘입어 정부의 국민차 보급 추진 계획으로 고속도로 통행비 50% 감면혜택 외 많은 세제 혜택등이 팍팍스즈 주어져서 큰 인기를 끌었다.

티코도 단점을 피할순 없겠죠.. 그럼 단점을 따져 봅시다.

더보기


자이제 전설속의 티코이야기를 해보자... (진짜가능한일만 과대포장해서 적었습니다.)

더보기

변속기는 3단 자동과 5단 수동이 있었고 1998년 5단 수동변속기를 바탕으로 개발된 세미오토 변속기가 추가 됬습니다.
티코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저개발국가의 엔트리카로도 인기를 끌어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폴란드의 대우 현지공장에서도 생산되었습니다. (동구권 분들은 대우를 너무사랑하죠.. 특히 씨에로는 동구권에서 벤츠 다음으로 고장 안나는 차로 유명;;)
우리나라에서 생산 및 판매는 2000년에 마지막 모델을 만들고 2001년에 생산이 중단되어서 역사속으로 증발됩니다..

요즘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걸 보면 우리동네에 그많던 티코들이 저 멀리 페루등지로 순간이동 했더군요/// 그래도 버려지지 않고 다른나라에서 사랑받는 모습을 보니 정말 다행입니다..

사진쇼&사양

           초기형인거같군요..

     초기형티코

      95년형 티코

     후반대에 나온 티코 기본형

      동구권수출용

     2000년형 최고급형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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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로는 디자인면에서 당시 경쟁차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그러나 고질적인 대우병(부실한마무리, 딸리는힘)이 이차의 좋은점까지 묻어버렸다.-


에스페로 광고(1990년)


에스페로(Espero)라는 뜻은 '희망한다, 기대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스페인어입니다. 이차는 대우가 쏘나타를 앞지르기위한 희망이자 기대작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현대자동차에게 중형승용차 시장을 빼앗기자 대우자동차는 위기 의식을 느꼈습니다. 1986년 개발을 시작해 4년이 조금지난 1990년 9월, 양산을 시작했습니다.
에스페로는 대우자동차에서 컨셉과 이미지를 정하고 베르토네사에 파견한 디자이너와 설계자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한 첫 독자모델이었습니다.
배기량 2,000cc의 다이나믹 스타일을 지닌 중형세단으로써 미래적인 날렵한 유럽형 스타일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 르망과 로얄시리즈의 중간 사이즈를 가진 모델이 필요했던 대우자동차는 '에스페로'에 큰기대를 했다.

디자인

당시 한국자동차시장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디자인이었습니다. 과감히 라지에이터그릴을 삭제하였습니다.(1세대 아반떼도 라지에이터그릴이 없었다.) 앞과 옆, 그리고 뒷유리로 이어지는 C필러 부분을 유리재질로 감싸 날렵한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풍겼다. (그러나 당시 국내기술의 한계가 디자인 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스타일을 다듬고 후방 시야를 넓히기 위하여 '6-윈도우'를 채택하였지만 뒷부분 도어 유리에 분할 바를 넣었습니다. 이 분할바는 에스페로의 디자인에 흠집을 주었다.)
여러가지 종류의 충돌사고로부터의 탑승자의 안전을 확보해주는 랩어라운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으며 차체의 라인이 매끈하게 잘 처리되었습니다. 또한 넓은 실내공간을 확보(당시 동급차종중 최대축간거리를 자랑함)하여서 실내 쾌적성이 높았다.
차량 범퍼 아래쪽에 커다란 에어땜(차량 하체에서 생기는 소용돌이를 억제해주는 역할)을 설치하여 공기역학적부분에서 뛰어난 성능을 냈습니다.(에스페로공기저항계수 : cd 0.29) 송풍구를 도어트림 쪽에 달고 도어 열림장치를 수평방향이 아닌 수직방향으로 설계하였습니다.
대우자동차의 전통대로 트렁크를 넓게 설계했다. 그리고 뛰어난 승차감과 주행성능으로 호평 받은 르망의 앞 스트롯, 뒤 콤파운트 링크 서스펜션을 그대로 이용했습니다. 르망의 휠베이스를 조금 넓혀 플랫폼을 완성해 개발비를 크게 줄였습니다.(자동차 휠베이스의 재활용??) 

초년

초기 에스페로는 르망에 쓰이고 있었던 2000cc 100마력 엔진이었다. 2000cc 엔진을 얹고 1세대 에스페로가 1990년 출시하였지만 엘란트라로 1500cc급 준중형차 시장이 형성되면서 크기는 쏘나타보다 작으면서 2000cc의 엔진을 얹은 에스페로의 위치가 모호해졌습니다.(쏘나타 + 엘란트라;;; = 안습//) 이로 인해 선보인 지 얼마 되지 않아 판매부진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중년&말년

대우자동차는 판매부진에 시달리던 에스페로에게 1991년 2월 독자개발한 1.5 DOHC, 100마력짜리 엔진을 하사 하였습니다. 이 엔진은 영국의 유명한 스포츠카 제조업체인 로터스사(나중에 기아에서 스포츠카인 엘란을 출시했는데 그모델을 만든회사가 로터스임)의 자문을 받아 설계되었습니다. 이 엔진은 중·저속 RPM 구간에서 최대토크를 발휘하도록 셋팅해 한국실정에 맞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대우자동차가 처음으로 독자개발한 1.5DOHC 엔진은 초기에 많은 취약점을 드러냈습니다. 고속 주행성능은 동급 차량들에 비해 떨어졌으며 부품의 정밀도가 떨어져 엔진오일이 새거나 노킹 현상을 보이는 차가 많았고 급가속 때 소음과 진동이 심하였습니다. 훗날 이 문제점은 해결되었으나 결국 에스페로의 이미지에 흠집을 주고 말았습니다. 

에스페로의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당시 대우는 과감한 마케팅 전략을 펼칩니다. 전국에서 모집한 품질평가단 100명에게 에스페로를 한대씩 빌려주고 달라진 대우자동차를 직접 느껴보라는 '에스페로 품질평가단' 을 펼쳐 판매증진에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마케팅 전략은 유럽시장 진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로인해 에스페로는 드디어 선진국인 영국에 1995년 상륙합니다.

탑기어-대우자동차 (1997년)(탑기어가 무슨 프로인지는 알거라고 믿음)

가격부터 성능까지 자랑할거 없던 안습 대우자동차는 1991년 11월 태일램프를 콤비네이션(피자아님..) 타입으로 교체하고 시트의 재질을 고급으로 높인 92년형 에스페로를 선보이고, 1993년 4월 라디오안테나와 휠 디자인이 변형되었고 이전에 있었던 2.0L, 1.5L 엔진 모델에 1.5L MPFi 90마력 모델이 추가된 새 에스페로를 선보였습니다.

에스페로는 1990년 9월에 탄생하여 1997년 12월까지 54만6천520대가 생산, 이 가운데 23만6천882대가 해외로 수출되었습니다. 에스페로는 90년대 대한민국 중형차 시장 역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대한민국 시장에서는 '비교적 싼값에 중형차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차'로 인기를 모았고 해외시장에서는 같은가격에 동급 차량들 보다 편의장비가 풍부하고 차체가 중후함이 좋은 차로 평가받았습니다.(그러나 5년뒤 에스페로는 외국에서 안습혹평을 받습니다;;; 역시 문제점은 나중에 드러나는듯... 그래도 개발도상국에서 에스페로가 아직까지는 잘 굴러다님...)

*사진, 비디오*

      에스페로~~~

                                1세대 뒷태

              1.5 DOHC모델 국산차는 이때쯤부터 엔진룸이 꽉차기 시작했다.
  
     2세대 앞

                          2세대 뒤
 
      2세대 옆

      탄생 에스페로!

           대우의 상징, 전자계기판!

      1세대 앞

      요놈도 1세대

      아바떼도 라지에이터그릴이 없다.

      대우 품질평가단, 지상비행광고(탑건의 주제가가 들어가서 화제가 된 광고!)


 
 광고 (1991년) 


지상비행편 (1991년)


 광고 (1991년)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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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굴탐험 2010.11.15 1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사회 첫 차였던지라 관심.....
    그리고 아직도 내 맘속 1순위로 있는 차라 관심있네요.
    정확히는 대우자동차가 GM과 분리후, 홀로서기과정에서 나온 차죠.
    르망의 차체와 파워트레인 등 여러모로 완결성에 아쉬움이 있을 수 있으나, 디자인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잠재울 수 있는... (물론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아직도 인상적인 것은 낮은 차체, 시트포지션... 엘란트라와 좁은 길에 마주치면 사이드 미러가 부딪치지 않습니다. 그만큼 낮다는 거죠. 직경이 적은 스트이링 휠, 파격적인 실내 디자인. 센터페시아는 약간 아쉽지만.... 베르토네 최고 작품중의 하나가 아닐지...

    • 어쩡이 2010.11.27 2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요. 베르토네의 역작중 하나로 뽑고 싶네요. 대우의 기술력이 뒷받침 되었다면 최고의 명작이었겠지요..
      그래도 보수적경향이 강한 한국시장에 이런 파격적인차를 선보임으로써 한국인들의 차고르기 기준을 업그레이드 했다는 점은 정말 칭찬하고 싶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타의추종을 불허한 미래형 고성능 소형승용차
 


대우자동차 르망 광고(1986년)

르망의 등장은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 혁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그혁명적인 모델은 디자인, 성능면에서 다른차들에 비해서 조금도 뒤지지않았습니다. (언제나 대우는 그랬다. 왜냐하면 해외시장에서 검증된 모델을 들여와 조립 생산했기 때문이다.;;;)
르망의 기본모델은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오펠의 카데트입니다. 카데트를 만든 오펠은 다소 복잡한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펠은 미국의 유명 자동차 회사인 GM의 자회사입나다. 그중 소형차 기술지원 및 엔진을 일본 이스즈(ISUZU, 트럭으로도 유명한 일본의 자동차 회사)에서 지원 받았습니다. GM이 이스즈에서 지원을 받은 이유는 GM이 주로 대형차만을 생산해서 소형차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잠깐! 오펠이 무슨회사인지 궁금하시다면 더보기를 눌러주세요^^

더보기


1986년 GM, 오펠, 대우는 '독일 오펠차를 대우가 생산, 판매는 GM의 폰티액이 맡는다'는 월드카 프로젝트를 수립합니다. 그래서 위에서보신 르망 광고에서 월드카라고 떠든것입니다. (참고로 미국에서 팔던 폰티액 르망도 우리나라에서 보던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르망의 베이스 모델인 오펠의 카데트

르망의 베이스모델인 오펠 카데트는 배기량 1.6ℓ과 2.0ℓ이 주를 이룹니다. 1.6ℓ모델이 카데트의 기본모델 입니다. 대우는 카테트의 기본모델 라인을 도입하여 르망을 생산하기로 하였으나 1.6ℓ엔진은 국내 세제상 불리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대우는 국내 실정에 맞게 엔진의 실린더 보어를 약간 줄이는 손질을 가해 86년 7월 1.5ℓ엔진의 르망을 내놓았다.
디자인에서 르망은 여태까지 우리나라에서 보던 포니, 제미니(1977년 출시된 대우의 소형차)와 전혀다른 혁신적인 모냥새였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존에 국내 차들에서는 언급도 못하던 공기 저항계수를 논할정도로 디자인면에서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공기저항계수: cd0.32) (이전의 국산차들은 한결같은 박스같은 모냥이어서 공기 저항계수라는 것을 언급도 못하였다.)

르망스펙
  • 길이 4,394mm, 너비 1,663mm, 높이 1,362mm, 1,498cc 89마력의 수랭식 직렬 4기통 전자제어 점화장치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최고시속은 170km 이었습니다.
  • 전자식 점화장치를 쓴 카뷰레이터 엔진의 1세대에 이어 88년 9월에는 미국 수출용에 장착하였던 직접분사방식의 TBi엔진을 얹어 2세대 르망시대를 열었습니다. (당시 전자장치가 들어갔다는 광고를 보고 초딩들이 르망이 전격Z작전에 나온 키트처럼 말한다고 하기도 했었다... 옅은지식;;;;)

91년 2월에는 양산차로는 처음으로 튜닝파츠를 쓴 르망 이름셔 모델을 내놓아 카매니아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지난글을 참고 하시길...)

1997년 2월 단종될 때까지 100만대가 넘게 생산되었습니다.


르망 사진과 광고...

      르망1세대

                      "어떤 르망을 원하십니까?"

      르망1세대 (이제품은 미국에서 팔던 폰티악 르망과 같은모델)

      88년 9월에 미국 수출용에 장착하였던 직접분사방식의 TBi엔진을 얹은 2세대 르망 출시.

     2세대르망 내부. 전자계기판이 매우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차중하나인 르망GSi(1989년)

 
르망GSi광고 (1989년)


      3세대 르망

      악! 전자계기판은 어디로?!!!!

      3세대 뒷태

     경쟁차종이었던 현대 포니엑셀, 프레스토

기왕오신거댓글좀써주세요..... 사진과글은 눈으로만...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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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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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르릉 2011.03.29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위 사진중 오펠 카데트라고 적은 모델은 오펠 레코드 같습니다.

    • 어쩡이 2011.03.31 1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펠이 팔던차들은 하나같이 이름에 복잡합니다. 독일에서 팔던모델은 레코드, 남미쪽과 한국에서 팔던 동일차종의 이름은 로얄레코드, 프랑스와 일부 유럽국가에선 카데트라는 이름으로 팔렸습니다. GM월드카계획이 낳은 난해한결과죠;;;^^

  2. 체리QQ 2011.05.29 0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위에 사진에 있는 오펠 카데트는 확실히 대우 로얄시리즈의 모체 레코드네요. 앞모습과 옆모습이 국내출시 모델인 대우 로얄프린스와 동일합니다.
    오펠 카데트는 1세대 르망과 판박이죠.

  3. 체리QQ 2011.05.29 0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고하시라고 남겨봅니다.
    http://www.opel-kadett.com/gallery/1987/opel-kadett-e-photo-large.html

  4. Rudedog 2012.02.04 1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데트 모델은 맞는데 르망이 베이스로한 카데트의 전모델이네요,


너무 현대차 위주로 글을 올리는거 같아서 대우차를 써봅니다.


이차는 90년도에 출시되었던 르망 이름셔입니다. (앞의 헤드라이트가 포니1에서도 보았던 두쌍의 땡글이 입니다. 일반 르망과는 좀 다르게 생겼죠??)


이차는 갠적으로 좋아하는 올드카중 하나인 르망 GSI(1989년) (어 땡글이 해드라이트가 없네;;; )

범퍼가 형상기억물질로 되어 있어서 당시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형상기억물질이란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지식인에서 찾아 봤습니다

변형을 시켜도 일정한 기온이 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부드럽게 구부리거나 힘을 빼면 원래의형태로 돌아간다.



 르망은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디자인, 성능면에서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근데 르망도 그냥 우리가 길에서 보던 놈이 아닌 레어템 르망레이서입니다.

여기서 잠깐 르망은 뉴구??? 인지 알고 싶으면 더보기를 꾹 눌러주세요^^

더보기


89년 스쿠프가 출시되었습니다. 스쿠프는 광고에서 '이제 스쿠프를 넘으려면 날개를 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우의 입장에선 이러다가 고성능 마니아차 시장도 뺏길판이었습니다.
 
시장점유를 향한 불타는 열정의 대우는 르망의 스페셜버젼을 시장에 투입시키는데 그 차가 바로 90년 5월에 등장한 르망 이름셔입니다.
출시 후 대우는 현대에 대한 복수전을 준비 했다는 듯이 이런 광고를 냈습니다. '이제 르망은 날개를 달았다.'


이 차는 이름셔의 에어로퍼츠로 꾸미고, 2.0L엔진을 올려 소형차세계에서는 거의 스포츠카급이었습니다.

단거리 기어비가 아닌 유럽셋팅을 그대로 가져온 롱스트로크의 기어비 셋팅등 대우차는 유럽형 이라고 각인시켜준 장본인 중 하나가 이름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외에도 로얄시리즈, 유럽풍 외관의 맵시나 [특히 하이디럭스 모델][맵시아님!]도 많은 공헌(?)을 함)

  • 국내 최초로 조수석 운전석 버켓 시트 장착.
  • 서스펜션은 포르쉐에서 주문 제작했다.(인테넷을 통해 알게됨.. 놀랐음)
  • 그 당시 최고속도인 185Km.(위에서 말하였던 일반 르망보다 더빠르다.)

그러나 다른 중소형 차량들에 비해 너무 비싼 가격, 한정판(사실 잘 팔려야 정상이지만..)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판매부진이 심했던 비운의 자동차입니다.

그래도 타 회사들이 대중성만을 따져 이익에 맞게 제작되던 습관을 벗어나 스포츠카를 꿈꾸게 했던 차이기에 대우는 언제나 내맘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런차를 출시하게한 당시 대우차 사장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동차란 시대의 유행, 회사의 이득을 따르는 것 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동차시장의 다양화와 선진화를 위해 힘쓰고 시장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르망이 잘 보여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p.s. 저번 포니쿠페글이 제가봐도 넘 재미없는거 같아서 이번엔 좀 다르게 써봣어요... 그리고 다음편은 르망 쓸께요...

    <인제 고딩이어서 글쓸 시간이 적습니다. 비정기적으로라도 글을 꼭쓰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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