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이전&자료복원예정입니다.
약2만장의 국산차자료가 한방에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자료가 많아서 하드가 계속 맛이 가는듯하군요... 벌써 하드만 4개째 맛이 가벼렸네요.. 큰맘먹고 SSD구입해서 장착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그사이에는 뻘소리 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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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연재니깐 간단하게 맛보기글부터 들어가겠습니다..


망자의 한이라고 해야할까?

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세계경영이란 슬로건하에 공격적 M&A와 공격적 외채도입경영으로 특히 동구권과 개발도상국에서 매일 그기세를 높여가던 대우그룹이란 회사가 있었습니다.

                                   ▲ 99년말 대우는 20개가 넘는 자회사(하청업체, 부서제외)를
                                       거느린 명실상부 재계1위 회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우는
                                       안내판에 써있는 회사들중 '주식회사 대우' (옛 대우실업)를
                                       제외한 모든 회사는 M&A 승리의 전리품이었습니다.
                                       <98년, 대우빌딩입구에 붙어있던 안내판>


리고 대우자동차가 있었습니다.

▲ 93년, 대우자동차는 이렇다 할 모델없는 업계꼴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아시아, 쌍용자동차 제외)
현대가 80년대 자체기술개발에 매진할동안 대우는 그냥 오펠에서 레코드하고 홀덴에서 코모도어 들여와서 로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팔았으니 이런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우가 당시 꺼내든 카드였던 세계경영의 일환으로 대우자동차에도 김우중의 손이 미치기 시작합니다.
<93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홍보전시관내>

"몇몇 사람들말에 의하면 김우중회장은 세계경영카드를 꺼내기전까지만하도 대우차계열에는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르망이 히트쳐도 로얄이 히트쳐도 점점 몰락해가던 시기에도 별관심이 없었고 그 이유로 92년까지 GM과의 합작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귀찮아서?) 그리고 가끔 GM의 대우차 매각제안도 관심있게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93년, 세계경영카드를 꺼내들자 태도가 갑자기 180도 변해서 애지중지하기 시작해서 결국 부도전까지도 매각은 없다 입장을 고수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대우그룹부도처리후에 김우중화장은 대우차는 반드시 자신이 경영할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참.. 알수없는 사람...;;;)"

 

                                            ▲ 헬기에서 내리는 김우중회장 <97년, 본사>

            ▲ 이제 우쭈쭈 내쒸끼 대우차 사랑이 시작됩니다.
               <96년, 누비라 최종개발차(출시전 제품 최종품평회쯤으로 보시길...)를 보는 김우중회장>
 

             ▲ 결국 내새끼 사랑은 FSO(폴란드국영자동차합영법인)라는 거대회사를 인수하게 됩니다.
                그것도 형님이었던 GM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서 말입니다.
                김우중은 FSO를 인수할때 파격적 제안을 걸었습니다. 먼저 2만여명의 모든 노동자들을 5년
                동안 정규직으로 유지시켜주고 보수도 100%올리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단, 노조활동은 5년간
                자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악속은 지켜졌고 폴란드뿐만 아니라 모든 동구권에서 대우는
                최고의 회사라는 명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김우중식 격적 세계경영을 본
                영국의 한 유력일간지는 몽고가 말을타고와 유럽을 정복했듯이 김우중이 대우차를 타고 유럽에
                상륙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대서특필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막역한 사이었던 
                우즈벡 대통령은 그를 일컬어 김기츠칸이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칭기스칸+김우중)
                <97년, 폴란드 FSO-DAEWOO에서 김우중회장과 FSO-DAEWOO공장장과 함께 시찰중인 모습>

            ▲ 98년, 베네수얼라 대우자동차 대리점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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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리스 2011.04.21 0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들이 있네요.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2. tibul 2011.07.25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아쉬운 기업이자 세계의그룹,최초로 경제학을 전공한 우리경제계에 큰 발자욱을 남긴 대우,부도를 낸 이유를 무리한 차입으로 상환능력을 꼽았지만 그럼 H,S그룹을 포함한 다른 기업의 상황은 어떻고?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세계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대한 평가가 어떻게 되겠냐는 생각해봤나? 대학도 못나오고 상황에 따라 말만해대던 정권의 경제부처에서 결정했겠지만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한다. 일찌기 우리경제계에서 온세계를 시장으로 실제 그렇게 발로뛴 기업인이 있었나?회장한사람만 책임지우면 안되었나?지금도 월남등 곳곳에 대우의 혈맥이 이어지고 있다.정부가 쥐고있는 은행의 여신.무지 무능한 정권에 의해 자금을 융자받지 못하고 아쉽게 그룹이 해제되었는데 당시 경제장관과 지옥에 가있는 쩔둑바리에게 묻고싶다.그그룹해체가 올바른 판단이었는지? 아쉽다.

    • 노리스 2011.08.18 1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대우를 꼭 그렇게 죽여야 했는지..대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쩡이입니다. 
한동안블로그 관리안했더니 참 썰렁해 졌네요..ㅎ
새해엔 열심히 관리하겠슴당...

2011년 어쩡이의 올드카 계획안
1. 한국자동차산업과 디자인 / 미정
2. 그동안 못썼던 '한국에서 태어나게해서 미안해~' 시리즈 / 기아 엘란, 쌍용 칼리스타, 대우 르망 이름셔
<내용, 자료보강 및 재구성>
3. 시대를 앞선생각 but 2% 모자랐던 차 시리즈 / 대우 에스페로, 기아 콩코드, 대우 르망, 현대 티뷰론 <확정X>
4. 한국자동차 춘추전국시대 7080 시리즈 / 현대 포니, 현대 포니엑셀.프레스토, 기아 봉고시리즈.베스타, 대우 로얄시리즈, 현대 스텔라, 대우 르망, 현대 그렌져, 기아 프라이드 <예상중, 확정X>
5. 대우자동차 화려했던 그때 / 자동차디자인계의 특종뉴스. 대우 IAD를 인수하다, 대우자동차 컨셉트카 총정리, 대우 왜 GM과 인연을 완전히 끊지 못했을까?, 김우중이 끝까지 매달리려 했던 종목 6가지<별첨>, 대우 왜몰락했나?<별첨>
<누구보다 대우그룹에 대해선 신수가 훤하기 땜시 역시 대우자동차를 떼놓을 수 없네요.ㅎㅎ>
6. 우리가 잊고있었던 90년대 정신,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걸까? / 현대의 열정의 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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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의 기술변천사가 로얄시리즈에서 모두 드러난다. (그속에서 서서히 망해가던 대우의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
초기 (1972년~1980년)
(회사변천 : GM코리아->새한->대우자동차, 차종 : 레코드시리즈->로얄시리즈, 베이스 : GM->OPEL)

이 모델이 GM코리아에서 새한자동차로 바뀌던 시절 나온 고급모델 레코드입니다.
이 모델이 로얄시리즈의 시초로 따질 수 있습니다. (시초는 시초일뿐 같은 모델로 취급하진 않겠습니다. 제목에는 78년으로 써놓고 부제엔 72년으로 써논 이유입니다.)
오펠의 레코드를 베이스로 하였습니다.
모약부터 앰블럼까지 어느하나 안빠뜨리고 들여온지라 우리나라에는 절대 맞지 않은 차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길과 궁합이 맞지 않는 낮은 저상고와 오일쇼크로 힘들던 시절에 GM특유의 낮은연비와 요란하신 품행으로 욕좀 많이드셨습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말아 드셨습니다.

음.. 이쁜디 말여...

 여하튼 레코드로 한번 말아드신 새한은 78년 현대그라나다가 출격후 대박을 치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오펠이 병주고 약주고를 실천하시련지 당시 서독 최신인기모델인 세나토와 몬자, 레코드를 만들며 우려먹기의 황제임을 과시하던 C-Car Project 베이스를 새한모더스님께 하사하려 합니다.

이에 새힌은 응용따윈 건너뛰고 그중 가장 울궈 먹기 좋아 보이는 레코드 베이스를 그대로 모셔와 조립합니다.
그리고 판매합니다.
음... 뭔가 빠졌군요...
네.. 마케팅이라는 상술을 8년만에 깨달은 다윈진화론에 입각한 새한은 진화를 시작합니다.

그래! 아거야!! 좀 있어보이는 단어를 사용하자구...!
'에어로 다이나믹스.. 어쩌구저쩌구..'
이제 좀 팔립니다... 판매를 꽤 짭짤이한 새한은 대우와 합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로얄이란 이름이 하사됩니다!!
됐어! 성공했어!!
엄마 아빠 김우중씨 나 드디어 고급차 만들었어!!!

국내 승용차 역사중 최악으로 기록됬을 미친존재감 로얄디젤...은 다음글에서... ㅋㅋㅋ

다음글에서 게속....

사진출처 : 소장, 구글
지식출처 : 내머리속, 위키백과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불펌하지 맙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댓글 써줍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광고 눌러줍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저작권 엄수 합시다.
만든살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 인간적으로 홍보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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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리스 2011.04.15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들이 많네요~다음 편도 기대 하겠습니다.

  2. マーチ 2014.10.20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기 레코드로얄은 말아먹기는커녕 1973년경에 경쟁모델이던 현대 포드 20M이 조기에 단종되는 바람에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사실상 시장 독점 효과를 누리며 높으신 분들의 애마로 어느정도 팔렸습니다. 포드 20M보다 차체는 작았지만 4기통 엔진이라 연비는 포드 20M 보다 좋았습니다. 게다가 코드명도 틀렸는데 오펠 레코드 계열은 C-Car가 아닌 V-Car 입니다.
    그리고 뉴 레코드 로얄은 오히려 그라나다 보다 2달 먼저 시판되었고, 뉴 레코드 로얄이 1978년 8월, 그라나다가 1978년 10월에 나왔습니다. 그라나다도 나온지 얼마 안되어서 78~79년 2차 오일쇼크 때문에 당시 장관급 관료들의 관용차들을 4기통 엔진으로 제한하는 바람에 6기통 엔진인 그라나다는 제대로 물먹어버리고, 4기통 엔진이던 새한(대우)의 로얄이 반사이익을 얻던 시절입니다.


<연평도사건 희생자분들을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시작전 헛소리.. 

더보기


1. DAEWOO NO.1 (1994년, 이탈디자인)
말할게 정말 없네요.. 그냥보시죠..

 어떤차인지 아시겠죠? 바로 라노스 입니다. 여러 컨셉트중 소프트탑 형태의 디자인도 있었습니다. 물론 출시도 할려구 했지만 대우차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바람에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뭐 이차는 놀랄만한 미래감각도, 눈이 뒤집힐만한 실내 인테리어도 없습니다. 그냥 양산직전의 테스트 버젼 같습니다.

  양산했다고 말해도 될만큼 컨셉트카 같지 않은 디자인...


2. Bucrane (1995년, 이탈디자인)
이차는 정말 말할게 많습니다.
뷔크란은 당시 대우에서 급조한 컨셉카로 유명합니다. 뭐 급조치곤 디자인이 우수합니다.

  곡선을 잘 이용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몇몇차종에서 조화를 보이지 못했던 대우만의 독특한 3분할 크롬그릴이 이차에서는 제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요상한 뚜껑은 제발 치워줬으면 좋겠습니다..

  앞쪽의 느낌은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이지만 뒤로갈수록 무언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약간 씩어설픈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제 아시겠죠? 앞면과 뒷면이 왠지 따로 노는 느낌입니다. 앞면은 매우 완성도가 높아서 칭찬해주고 싶지만 본네트 뚜껑을 지나서부터는 점점 따로놀기 시작합니다. 뭐라고 해야할까요? 짝이 안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뒷면이 정말 아쉽습니다.

 근데 또 이렇게 위에서 보면 멋집니다. 정말 요상한 차죠.. 이건 뭐 신용카드 홀로그램도 아니고 각도에 따라 왜이리 분위기가 다른지...
 
 음 괜찮은디...

으악!! 미치것네..

  이제 내부에서 급조의 흔적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 짝이 안맞는 어색한 에어컨은 어디선가 많이 본거 같죠?
바로 아카디아에서 그대로 가져온것입니다. 버튼하나 안빼고 가져왔습니다.
변속기... 물론 아카디아 껍니다.
심지어 계기판도 아카디아에서 공수해 왔습니다. 이쯤되면 공수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겠지요..
기술 없는 회사의 설움입니다. 컨셉카 하나도 만들기 힘들지요..
아참, 엔진도 아카디아껍니다.
오디오도 아카디아거냐고요? 다행이도 오디오는 아카디아가 아닌 에스페로에서 옵션으로 제공되는 CD오디오입니다.;;

역시 자동차회사의 생명은 자체기술입니다.

3. Daewoo No.2 (1995년, DWTC)

전모델이야기

더보기



No.2는 매우 우수한 차량입니다. 이 차의 디자인은 멋과 실용성, 두마리의 토끼를 잡은 대우의 흔치않은 컨셉카입니다.
멋으로 보면 역시 3분할크롬그릴, 독특한 헤드라이트, 잘 뽑은 컬러, 파노라마루프등 많은요소에서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약간 안어울리는 휠과 옆면의 대우로고는 이 차의 우수함을 아쉽게도 감해주는것 같군요..
실용성으로보면 쾌적하고 탁트인 실내, 2인승 화물밴 or 5인승 패밀리밴 or 3인승 화물밴으로 바꿀 수 있는 활용성 높은 시트설계, 높은높이에도 불구하고 균형감있는 디자인으로 엔진 배치와 설계가 매우 자유롭습니다 : 하이브리드, 전기, 가솔린등 어느엔진이든 설치가 가능하고 FF, FR, AWD등 구동방식도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차체는 알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써서 경량화를 실현했고, 헤드램프는 첨단 광학섬유를 사용하고 A필러쪽으로 붙어놓은것이 특징입니다, 리어램프는 네온램프를 적용했습니다, 멋지군요...

 실내도 완성도가 매우 높고 멋집니다. 블루라이트를 사용하여 실내가 미래적으로 보입니다. 라디오 볼륨버튼 같이 생긴 멋진 변속레버, 미래형계기판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색채도 적절히 조화롭게 보입니다.
하지만 아쉬운점은 오래동안 보면 눈빠질거 같은 계기판 밝기와 실용성이 의문인 에어컨구멍. 좀만 다듬어서 지금이라도 출시하면 대박날거 같군요..

  문짝이 열려있어도 No.2는 이름처럼 시크한 매력을 유지합니다.ㅋㅋ

 배기구와 램프가 일체되어서 매우 깔끔합니다. 넓은 뒷유리는 주차시 매우 좋을거 같습니다. 번호판위 플라스틱의 재질만 높였으면 좋겠군요..


2편에서 계속... 다음글은 기아 콩코드(or 구형프라이드)

댓글진심매우매우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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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을 엄수합시다.
연평도사건 희생자분들을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자료출처 : http://autowp.ru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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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더라도 잘봐주세요;;;.. (기왕이면 광고 클릭도...)


주지아로의 다자인+미쓰비시의 기술+현대의 의지 = 현대 포니


 포니 광고 (1975년)


새나라와 브리사가 점령하고 있던 70년대초의 도로에 포드의 유명모델들을 들여와 조립해 골치나(웒래이름 코티나, 너무고장이 많아서 택시 기사들 사이에선 골치나로 불렸음..)와 같은 명작(?)을 만들던 현대라는 회사는 그냥 우리나라 도로사정에 안맞는 골치나는 차나 양키들에게 들여와서 조립하는 2류회사에 불과했습니다. 근데 안좋은 이미지에 하늘은 재를 뿌리려는 심상이었는지 현대 울산공장이 폭우로 모두잠겨 포드 부품과 완성차들이 모두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자신들의 고유모델이 팔요하다고 판단 했는지 현대는  포드에게 기술이전을 받아서 차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포드사는 기술이전만은 절대안된다고, 니들은 짜져서 걍 우리가주는 골치나는 차나 조립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현대는 기여히 배신을 때릴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름하여 독자모델 만들기 프로젝트!
이탈디자인&미쓰비시자동차와 함께 독자모델 만들기에 착수합니다.(기술이 없으니 해외에서 배워야겠죠..) 그리하여 현대가 그토록 갈망하던 고유모델의 컨셉커인 포니쿠페3도어가 주지아로의 수려한 디자인 실력으로 74년 선보입니다.(물론 포니쿠페는 시판되진 못했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포니쿠페3도어는 국민들의 사치심조장 및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시를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세월은 흘러 1975년 귀여운 조랑말모양의 앰블럼을 달고 예쁘장한 포니가 출시됩니다. 당시 포니가 처음 나왔을때 브리사, 새나라와 같은 차만 보던 우리나라 국민들은 저것들이 또 이상한 디자인의 골치나는 차를 출시했구나라고 반응을보이며 안살것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포니는 곁으로 보기에는 해치백스타일이나, 실제로는 캐빈룸과 트렁크룸이 분리되어있는 특이한 모냥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포니를 사본사람들이 성능과 실내공간 활용도가 우수하다는 소문을 내면서 드디어 판매에 시동이 걸립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2번째(일본이 첫번째), 세계에서 16번째로 고유모델을 만든 나라가 되었습니다.

후륜구동방식의 미쓰비시 1,238cc 직렬 4기통 새턴엔진을 얹었고, 후에는 1,439cc 엔진도 출시 되었습니다.

포니는 에콰도르에서 5대를 계약받아 처음으로 수출했습니다. 그후 미국, 영국등 여러나라에서 판매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10,726대가 판매되어 43.6%의 점유율을 보이며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를 열었습니다.
[당시 현대건설에 다니던 이명박대통령도 포니 제작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찍찍찍..)]

포니제원

더보기


 구분 1.2 1.4 
 사용연료 가솔린  가솔린 
 배기량(cc) 1,238  1,439 
 최고출력(ps/rpm) 80/6,300 92/6,300 
 최대토크(kg*m/rpm) 10.8/4,000 12.5/4,000 

사진들

             토리노 모터쇼에 참가한 포니







             인테리어 소개

             멋진계기판과 실내, 갖고싶다;....















































참조 : 구글,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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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막의 여우 롬멜 2010.10.17 1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동차에 관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써주셨으면 좋겠는데...

대우 맵시나는 망한 모델인 제미니를 성공적으로 재생시킨 한국형 월드카였다.

 맵시나 광고 (1984년)

주저리주저리 막 썼어도 잘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댓글도 많이좀 달아주세요ㅠㅠ... (기왕이면 광고클릭도;;)


이시기에 나온 대부분의 대우차는 오펠에서 베이스를 가져와 엔진크기를 줄여서 조립한 차이다. 엔진크기를 줄인 이유는 우리나라 세제에 맞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로얄프린스에 1500cc엔진이 달린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뭐 스텔라도 그런데 세삼스럽게 놀라긴..;;;)
맵시나는 맵시의 후속이라는 뜻이다. 즉 가나다순을 생각하면 된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맵시나 이야기를 해보자.

맵시나는 74년 데뷔한 3세대 오펠 카데트가 아버지다. 오펠 카데트는 GM이 처음 월드카로 만든 차였다.(르망도 월드카였다).
월드카란 하나의 차종으로 세계 여러 곳에 공통되게 팔리는 모델을 말한다. 플랫폼은 물론 바디도 공유하고, 부품을 공동구매하여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이 월드카의 최대 목적이다. 즉 여러나라의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아나라 본사에서 하나의 모델을 개발하면 여러나라에서 그 베이스모델을 가져다 조립해 독자 브렌드를 붙어서 파는 것이다.

월드카의 대표적인 모델인 오펠 카데트의 해치백 스타일은 미국에서 시보레 쉐벳으로 만들어지고, 일본에서는 노치백 스타일의 이스즈 제미니로 나왔다. 현대 포니에 맞설 차가 필요했던 새한자동차(후에 대우자동차로 바뀜)는 77년 이스즈 제미니 모델을 들여와 판매를 개시했다. 당시 첨단 감각의 포니에 맞설 차로 1400cc 독일차의 피가 흐르는 제미니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듯했다. 그러나 고장이 잦고 연료소모가 커 포니의 독주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엔진은 전 모델 카미나의 것이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전세계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월드카는 전세계인의 불만을 산 싸구려 자동차로 전락한다. 한 곳의 취향에 맞추기 위한 노력은 다른 곳의 불만을 가져왔다. 마치 끝없이 자라는 잡초 같이. 그리고 싸게 구입한 부품을 필요한 지역으로 나르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GM의 1차 월드카 전략은 실패한다.

결국 제미니는 대우의 뛰어난 재탕기술력을 바탕으로 82년 초 맵시로 이름을 바꾸며 프론트 그릴을 슬랜드하게 손질했다. 억지에 가까운 변화가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플라스틱 사출이 흐느적거리는 그릴과 사각 헤드램프의 처리가 엉성했다. 독일에서는 이미 다음 세대 카데트가 나온 뒤였다. 한마디로 구형을 허접한 기술로 조립해 허접한 차로 만든것이다.

그리하여 재탕 맵시는 3탕과정을 밟어 83년 다시 맵시나로 바뀌고, 85년 초에는 4탕 맵시나 하이 디럭스 모델이 나왔다. 근데 재탕 맵시는 맛있게 말아먹었지만 3,4탕인 맵시나는 달랐다. 이 차는 당시 대우의 최고급 차량이었던 로얄 살롱을 축소한 모양으로 작은 차에 최고의 사치를 담았다. 독일과 일본에서는 사라진 모델이 한국에서는 크고 화려한 차로 탈바꿈한것이다. 월드카가 변신해 한국화한 결과가 맵시나이다. 85년 현대는 포니엑셀&프레스토로 미국과 한국에서 짭짤한 돈맛을 보고 있었다.
월드카의 산산조각난 잔해를 모아 만든 차 맵시나 하이 디럭스는 초탕 제미니의 최후의 엑기스였다. 그리고 그 최후의 엑기스는 대우가 80년대 고급승용차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도록 도와준 쓰디쓴 눈물의 엑기스였다.

 맵시나 디럭스는 86년 르망이 나올 때까지 대략 2만 대 정도 만들어졌다. 놀라지 말기를... 후속차량은 르망이다.;;

      *광고&사진 콜렉션*

      전형적인 80년대 광고군요...

                 이제는 거리가 아닌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맵시나의 84마력 V6 XQ엔진은 일상적인 드라이빙에 이상적이다.

                        어디선가 제미니의 냄새가...

                        당시 자동차 산업의 한계는 엔진과 실내 마감도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역시 맵시나도 실내
                       플라스틱마감도를 직접보면 실망을 금치 못한다.

                       왕관마크가 고급승용차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짝반짝 크롬~

                       번호판등이 왜 4개일까요??

                        앗! 휠에는 대우마크네요;;; 왕관 빠싱~

                       사진빨 먹여주기위한 커튼처리...

     죄다 하이디럭스 모델이네요;;;

          요놈도;;

      너마저 하이디럭스;;;

      그나마 옆에 있는 맵시나 원형...
  


      베이스가된 맵시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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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를 비웃지 말아라.


 대우 티코 광고 (1991)

TICO = Tiny + Tight + Convenient + Cozy (해석은;;;;)

티코를 흔히들 대우자동차에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말이다. 티코는 대우조선(지금의 대우조선해양)산하 대우국민차에서 만든 차이다. (뭐 구지 따질필요 없지만;;; 다 대우그룹인데...)
대우조선은 정부의 국민차 계획하에 1989년즈음에 대우조선이 일본 스즈키와 계약을 맺는다.
티코는 스즈키의 유명 경승용차 모델인  알토(Alto)를 베이스로 개발한 개량 버젼이라고 보면 된다.
티코를 몰아본 분들중 몇몇은 속도가 꽤 괜찮게 나온다는 느낌을 받아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이유는 스즈키 알토가 일본 경차규격에 맞추기 위해 600cc에 최적화하여 만들었는데, 티코는 여기에 약간 모자라보이는 직렬 3기통 657cc 엔진을 빼고 직렬 3기통 796cc엔진을 얹었다. 그래서 티코가 경차치고 가볍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파워핸들 땜시 가볍게 몰진 못했다;;; 힘들다..)
여하튼 마침내 티코는 1991년 창원 대우국민차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한다.
출시 당시 국민소득의 가파른 성장으로 거세게 불던 마이카 열풍에 힘입어 인기를 끌었다. 물론 부담없는 가격과 연비가 판매에 한몫 했다. (당시 가격으로 319만원 부터 시작되었다.)
티코로 인해 한국의 경차 시장이 서서히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힘입어 정부의 국민차 보급 추진 계획으로 고속도로 통행비 50% 감면혜택 외 많은 세제 혜택등이 팍팍스즈 주어져서 큰 인기를 끌었다.

티코도 단점을 피할순 없겠죠.. 그럼 단점을 따져 봅시다.

더보기


자이제 전설속의 티코이야기를 해보자... (진짜가능한일만 과대포장해서 적었습니다.)

더보기

변속기는 3단 자동과 5단 수동이 있었고 1998년 5단 수동변속기를 바탕으로 개발된 세미오토 변속기가 추가 됬습니다.
티코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저개발국가의 엔트리카로도 인기를 끌어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폴란드의 대우 현지공장에서도 생산되었습니다. (동구권 분들은 대우를 너무사랑하죠.. 특히 씨에로는 동구권에서 벤츠 다음으로 고장 안나는 차로 유명;;)
우리나라에서 생산 및 판매는 2000년에 마지막 모델을 만들고 2001년에 생산이 중단되어서 역사속으로 증발됩니다..

요즘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걸 보면 우리동네에 그많던 티코들이 저 멀리 페루등지로 순간이동 했더군요/// 그래도 버려지지 않고 다른나라에서 사랑받는 모습을 보니 정말 다행입니다..

사진쇼&사양

           초기형인거같군요..

     초기형티코

      95년형 티코

     후반대에 나온 티코 기본형

      동구권수출용

     2000년형 최고급형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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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너무 불행했다. 잘못된 만남이었다. 이차는 기아를 경영악화로 몰고갔다.


엘란광고 (1996년)

(단종을 알리는 당시 조선일보기사 http://www.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9041270312 )

엘란... 정말 운이없는 차중하나이다. 판매대수 1053대.... 어쩌면 이정도만 팔린게 기아입장에선 다행이었을것이다. 왜냐하면 엘란은 많이 팔수록 회사입장에선 적자인 차종이었기 때문이다. 이 차 때문에 기아는 재정악화 상황까지 갔고 결국 회사가 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엘란은 누구?

엘란은 기아자동차가 1996년 7월에 출시한 차이다. 이차는 한국에서 두번째로 출시된 로드스터 차량이다. 영국의 유명 자동차 회사인 로터스사의 기초설계를 바탕으로 기아가 엔진을 변경하고 지상고, 차체, 실내 설계 일부를 수정하여 국산부품비율을 85%까지 높혀 생산하였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인한 기아자동차의 경영 악화와 엘란 자체의 수익성 부족 문제로 인해 1999년말 단종되었다.

엔진&변속기

엘란은 명실공히 국내 최초의 정통 스포츠카 답게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결집된 Hi-SPRINT 1.8 DOHC엔진을 탑재하여, 시동키를 돌리는 순간 강렬하게 뿜어 나오는 배기음에서 고성능을 예감한다. 최고출력 151마력으로 동급의 외제 스포츠카를 능가하는 가공할 파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피드, 0~100km/h까지 도달 시간 7.4초의 가속성능은 차라리 전율에 가까운 드라이빙 쾌감을 느끼게 한다.


엔진은 기아자동차가 독자개발한 배기량 1,793cc의 TSD-DOHC 엔진을 적용하였다. 이엔진은 크레도스에 들어간 엔진을 사용했다. 엔진의 최고출력은 151마력, 최대토크는 19kg·m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220km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까지의 소요시간은 7.4초이다. 앞바퀴 굴림방식에 5단 수동변속기가 적용되었으며, 스포츠카 답게 자동변속기 모델은 생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티어링 휠이 상당히 무겁고 변속기도 조작감이 분명하지 않아 변속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보기전엔 구분하기 힘들다. 정말 운전하기 힘든차지만 잘빠진 몸매를 보면 모든화가 풀릴듯...;;

특이점

정통 스포츠카는 급가속, 고속주행, 고속선회 등 가혹한 운행여건 속에서도 완벽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그 어떤 차보다 강인한 프레임을 갖추어야 한다. 엘란은 물고기 등뼈처럼 차량 전체를 강력하게 지지해주는 초고강성 백본 프레임(Backbone Frame)을 채택하였다. 고속직진시 안정성을 보장하는 정확한 무게중심, 급코너링시에도 비틀리지 않는 횡강성, 충돌시에도 운전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철저한 승객보호능력, 고속 드라이빙시 더욱 극명하게 입증되는 엘란만의 놀라운 안정성과 핸들링 성능 뒤에는 백본 프레임과 같은 세계적 특허기술이 숨어 있다.

엘란의 등장은 최첨단 신소재 자동차 시대의 개막을 의미하기도 한다. 엘란은 일반 스틸바디보다 경량이면서 강성과 내충격성은 월등하고 단위무게당 에너지 흡수율 역시 3배 이상 높은 영국 로터스 특허 공법의 V.M.R.P(VARI Mould Reinforced Plastic)바디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접촉 및 충돌시 탁월한 안정성으로 차체 손상을 극소화함은 물론, 스틸 바디에서는 생각할 수 조차 없었던 부분수리 및 강력한 색상표현까지 가능하다.



다른차에 비해 차체길이가 짧고 차체의 앞쪽보다 뒤쪽이 더 크기 때문에 일반 차를 운전하다가 엘란을 운전하면 감각이 매우 다르다. 땅바닥에 앉아있는 것같은 운전석도 일반승용차와 다른 점.
평범한 승용차만 몰던 사람이라면 매끄럽게 코너를 빠져나가기 힘들다.

다른 스포츠카와 다르게 놀라운 연비!(11.8km/L)

실내

엘란의 실내는 실망스럽다. 슈마나 세피아II 와 함께 쓰는 부품이 많아 단조롭다.
화려한 겉모습을 반감시키는 엘란의 실내는 실망스럽다.

제동

엑셀을 살짝만 밟아도 땅을 박차고 나갈 정도로 가속력이 뛰어난 엘란이지만 브레이크 성능은 기대 이하이다. 다소 밀리는 브레이크 때문에 감점을 줘야 할 것 같다. 어짜피 이제는 엘란을 생산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냥 입닫고 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야확보

엘란은 시야가 좋지않다. 따라서 고개를 쑥 빼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코너링

(엘란사랑님께서 수정을 요구하셔서 수정을 하겠습니다. 2010년 4월 8일)

엘란은 전륜구동(FF)차량중 코너링 성능이 가장 뛰어나기로 평가받았던 차량이다. 그러나 일반차량을 타고다니던 오너라면 엘란의 특이한 코너링은 낮설 수 있다.
다른차에 비해 차체길이가 짧고 차체의 앞쪽보다 뒤쪽이 더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국산승용차를 몰던 사람이라면 엘란의 특이한 코너링은 낮설어진다. 하지만 엘란의 코너링에 익숙해지면 운전하기가 쉬워진다.

종합

엘란이 실패한 이유를 인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 엘란은 공식적으로 전륜구동차량중 코너링이 제일 좋은차답게 스포츠카다운 코너링을 보여준다. (지극히개인적인생각: 스포츠카의 기본에 충실하는 자세는 매우 좋지만 국내소비자들의 운전습관을 조사해서 좀더 세밀하게 만들었으면 낮설지 않은차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2. 변속기가 수동인만큼 변속조작감을 확실히 해야 한다.
  3. 우리나라 도로는 산악지형이 많다. 그리고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운전을 난폭하게 해서 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많다. 브레이크의 제동력이 확실해야 한다. 스포츠카는 빠른속도와 브레이크가 생명! 브레이크를 개선해야 한다.  이부분은 브레이크 업그레이드 행사 이후 개선된 버전으로 주행시 브레이크 성능이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저는 업글전차량을 기준으로 썼었습니다.. 업그레이드모델을 누락한점 죄송드립니다.)
    거기에 약간의 튠업(디스크 사선가공 + 스포츠패드 + dot4 브레이크오일)을 하면 제법 좋다고 합니다. (브레이크문제 해결!!!)
  4. 당시 소비가가 느끼는 2750만원은 엄청난 돈이었을것이다.(IMF시대였으니깐...) 시장조사를 확실히 해서 현지화를 시켰어야 했다. 그래도 기아도 나름대로 가격을 최대한 낮추었다.. 결국 시대를 잘못만난 죄... 
  5. 컨버터블의 존재감은 직접타보면 알 수 있다. 역시 간지난다... 공기 좋은 강원도 쪽에서는 최고다. (그래도 지극히개인적인 생각 : 칼리스타가 처음나왔을때 리뷰어가 뚜껑을 열고 광화문네거리를 잠깐 돌았는데 코가 새까매졌다는 말이 있다. 국내에서 뚜껑열리는 차는 그다지 매력이 없었을둣...)


*2010.06.06 : 엘란사랑, FreeD님의 요구사항대로 글을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란제원

구 분

ELAN

전 장(mm)

3,880

전 폭(mm)

1,730

전 고(mm)

1,270

실 내

장(mm)

960

폭(mm)

1,400

고(mm)

1,060

축 거(mm)

2,250

윤 거

전(mm)

1,485

후(mm)

1,485

오버항

전(mm)

965

후(mm)

665

최저 지상고(mm)

130

공차중량(kg)

1,070

배기량(cc)

1,793

연 비(km/l)

11.8

최고출력(ps/rpm)

151/6,250

최대토크(kg.m/rpm)

19.0/4,500

최고속도(km/h)

220

가속능력(sec)

7.4

TIRE

205/55 R15

등판능력(tanθ)

0.874

회전반경(m)

5.3

제동거리(m)

10.8

브레이크

V. DISC

DISC

현가장치

Interactive D/Wishbone

D/Wishbone




































생산년도: 1996년7월~1999년

사진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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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엘란사랑 2010.04.04 1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너링 성능이 형편없다는 말씀에는 공감할 수 없네요.
    전륜구동(FF)차량중 코너링 성능이 가장 뛰어나기로 평가받았던 차량이 엘란인데요..;;

    • 어쩡이 2010.04.04 2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반세단과 비교해서 쓴글입니다 엘란의 코너링이 공식적으로는 가장좋지만 일반세단을 몰던 오너입장에서 엘란의 코너링은 낮설수도 있겠죠... 제가 너무 세단과 비교하여 쓴것 같습니다.
      이번글의 코너링부분은 수정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정확한 충고 감사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빠른 시일내에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2. FreeD 2010.04.21 18: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폄하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면서
    올려놓으신 내용 중 엘란이 실패한 이유에 관해 제 사견을 적어봅니다.

    1번 : 원래 수익성을 위해 만든 일반인용 차가 아니기에 국내소비자들의 운전습관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은
    적합한 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번 : 다른 차량에 비해 변속조작감이 좋지 않다는 말에는 동감합니다.
    3번 : 브레이크 업그레이드 행사 이후 개선된 버젼으로 주행해보면 브레이크 성능이 나쁘지 않습니다.
    거기에 약간의 튠업(디스크 사선가공 + 스포츠패드 + dot4 브레이크오일)을 하면 제법 좋습니다.
    4번 : 1번 내용에서처럼 매니아용 차라는 점에서 가격의 문제는 생각이 다릅니다.
    어차피 팔수록 손해보는 차였지만 더 이상 낮은 금액으로 공급할 수는 없었을꺼구요.
    5번 : 컨버터블의 존재 이유는 직접 타보아야 알 수 있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 어쩡이 2010.06.05 0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적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제가 그동안 중간고사에 수행까지 몰아치기 하느냐고 이제서야 보게되었네요.. 곧수정하겠습니다!

  3. 2010.05.12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엘란사랑2 2013.02.10 1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엘란 오너입니다.^^
    엘란의 시야확보와 관련해서..
    엘란은 원래 2인승 로드스터 입니다
    로드스터란 태생부터 옆창문과 지붕이 없는 차를 일컫는데요
    세상엔 흔히들 말하는 여러종류의 오픈카가 있지만
    같은 오픈카라도 차량별로 오너가 느끼는 개방감은 다릅니다.
    잠시 말을 돌려서....
    엘란에게 지붕(소프트탑)은 갑작스런 눈이나 폭우를 맞았을때
    차량과 차주를 보호하는 임시의 방편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말은 비오는날 비가 샌다, 바람소리가 들어온다,
    냉, 난방에 약하다, 이런말은 엘란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엘란의 전방시야는 신호대기중 거북목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픈을 하면, 전방에 가려져 있던 시야가 확 트이면서
    비로소 엘란의 진면목이 나오게 되는거죠.
    이것은 오픈카의 기본에 매우 충실한 설계입니다. ^^
    엘란 많이 사랑해주세요.


가히 국민 중형차라 불릴만한 최고의 베스트 셀링카였다. 매우 딸리는 엔진만 빼면 말이지...;;



소개영상 (1983년) (출력이낮습니다.)


현대 스텔라는 1983년부터 1997년(일반승용차는1991년까지 생산됨)까지 현대자동차에서 생산된 후륜구동의 중형승용차입니다. 스텔라는 당시 중형자동차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대우자동차의 로얄시리즈에 맞서기 위하여 탄생하였습니다. 스텔라는 포드 코티나의 샤시를 이용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현대 최초의 고유모델입니다. 디자인은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맡았습니다.
스텔라를 바탕으로 소나타(Y1)가 탄생했습니다(1987년 쏘나타가 풀체인지되면서 스텔라 GXL로 개명되어 1991년까지 팔렸습니다.)
1983년 당시의 국산차는 모두 수동변속기 그것도 4단에 불과했고, 자동변속기 차량은 거의 전무했습니다.(포니오토가거의유일..) 스텔라는 바로 이점을 노려 국산 자동차 최초의 5단변속기차량이라고 자랑하는 광고를 하여 동력성능 면에서 월등함을 강조했습니다.(포니엔진에 5단변속기;;;) 이런 점 때문에 인기를 얻은 스텔라는 입소문을 타고 마침내 엄청난 판매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당시 월 판매량이 2,000여대 였는데 이는 80년대 당시 국산자동차 시장기준으로 보면 매우 큰 숫자였다. 요즈음으로 치면 쏘나타가 매달 10000여대 판매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배우 금보라나 안성기도 스텔라를 뽑았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잘나가던 스텔라에 큰문제가 생기었습니다. 차량 배선 문제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결국 스텔라의 판매는 곤두박질을 치고 맙니다. 그러자, 현대는 스텔라를 1.5엔진으로 단일화해, 판매량을 다시 끌어올리게 됩니다.
1985년에는 5마일 범퍼를 장착하고 모켓시트를 채용한 캐나다 수출용모델인 CXL(Canada eXported Limited)모델을 출시합니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 공식차량(스텔라88)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변속기는 미쯔비시 제품을 썼습니다. 엔진은 1986년까지 포니2에 사용되던, 1.4와 1.6엔진을 썼다.(이래서 스텔라가 힘이 안습이라고 햇었음;;; 크기는 소나타인데 엔진은 포니;;;) 그뒤인 1987년에 2.0이 더해졌다. 이 2.0L엔진이 그 유명한 4G63엔진(일명 시리우스 엔진)이다. 미쯔비시에서도 시리우스엔진을 9세대 란에보가 생산될때까지 달 정도로 내구성이 좋았다고 합니다. 자가용은 1992년에, 택시용은 1997년에 단종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됩니다.

*광고와사진

스텔라 광고 (1983년)(소리출력이약간높습니다.)


스텔라프리마 (1984년) 골든팩이 유명했었죠..

     요놈이 당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오토자동차인 포니오토매틱. 그다지 잘팔리지는 못했다.

                          프리마는 새로워진 그릴과 크롬장식, 그리고 그 유명한 골든팩이 적용되어 화제가 되었던 모델이다.
 
     1400cc엔진을 얹은 스텔라 프리마E, 경제성을 강조했던 모델이다.

     안성기씨도 스텔라를 탔었다.

     5마일범퍼등 캐나다 수출용에만 있던 기능을 달고 나왔던 유명인사 스텔라CXL

 
'카나다 수출형 스텔라 CXL!' 광고 (1985년)

     스텔라중 제일 싼 모델이었던 스텔라GX

     초기 쏘나타(Y1)는 스텔라를 가져다가 옵션만 추가시킨 것이었다.

                                1.8MPi엔진을 얹어서 힘을 향상시켰던 스텔라1.8i

     스텔라 프리마



                                     
                                      영국잡지에도 소개된 스텔라.

                                      다이하쯔,타보트사의 동급차량과 비교


                                          영국 책자.

                                           





                                            so much car you'll hardly believe the price.

                       내부



                       멋진 흑백사진.

                                       영국광고


 
영국광고 (1984년) (여러 잡광고가 셖여있습니다.)

                    

                                 스텔라 CXL

                       택시용 스텔라 1991년)

           스텔라는 원래 로얄왕국과 맞써기위해 탄생하였지만 어쩌다가 패밀리 세단이 되버렸다..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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