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더라도 잘봐주세요;;;.. (기왕이면 광고 클릭도...)


주지아로의 다자인+미쓰비시의 기술+현대의 의지 = 현대 포니


 포니 광고 (1975년)


새나라와 브리사가 점령하고 있던 70년대초의 도로에 포드의 유명모델들을 들여와 조립해 골치나(웒래이름 코티나, 너무고장이 많아서 택시 기사들 사이에선 골치나로 불렸음..)와 같은 명작(?)을 만들던 현대라는 회사는 그냥 우리나라 도로사정에 안맞는 골치나는 차나 양키들에게 들여와서 조립하는 2류회사에 불과했습니다. 근데 안좋은 이미지에 하늘은 재를 뿌리려는 심상이었는지 현대 울산공장이 폭우로 모두잠겨 포드 부품과 완성차들이 모두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자신들의 고유모델이 팔요하다고 판단 했는지 현대는  포드에게 기술이전을 받아서 차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포드사는 기술이전만은 절대안된다고, 니들은 짜져서 걍 우리가주는 골치나는 차나 조립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현대는 기여히 배신을 때릴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름하여 독자모델 만들기 프로젝트!
이탈디자인&미쓰비시자동차와 함께 독자모델 만들기에 착수합니다.(기술이 없으니 해외에서 배워야겠죠..) 그리하여 현대가 그토록 갈망하던 고유모델의 컨셉커인 포니쿠페3도어가 주지아로의 수려한 디자인 실력으로 74년 선보입니다.(물론 포니쿠페는 시판되진 못했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포니쿠페3도어는 국민들의 사치심조장 및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시를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세월은 흘러 1975년 귀여운 조랑말모양의 앰블럼을 달고 예쁘장한 포니가 출시됩니다. 당시 포니가 처음 나왔을때 브리사, 새나라와 같은 차만 보던 우리나라 국민들은 저것들이 또 이상한 디자인의 골치나는 차를 출시했구나라고 반응을보이며 안살것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포니는 곁으로 보기에는 해치백스타일이나, 실제로는 캐빈룸과 트렁크룸이 분리되어있는 특이한 모냥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포니를 사본사람들이 성능과 실내공간 활용도가 우수하다는 소문을 내면서 드디어 판매에 시동이 걸립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2번째(일본이 첫번째), 세계에서 16번째로 고유모델을 만든 나라가 되었습니다.

후륜구동방식의 미쓰비시 1,238cc 직렬 4기통 새턴엔진을 얹었고, 후에는 1,439cc 엔진도 출시 되었습니다.

포니는 에콰도르에서 5대를 계약받아 처음으로 수출했습니다. 그후 미국, 영국등 여러나라에서 판매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10,726대가 판매되어 43.6%의 점유율을 보이며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를 열었습니다.
[당시 현대건설에 다니던 이명박대통령도 포니 제작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찍찍찍..)]

포니제원

더보기


 구분 1.2 1.4 
 사용연료 가솔린  가솔린 
 배기량(cc) 1,238  1,439 
 최고출력(ps/rpm) 80/6,300 92/6,300 
 최대토크(kg*m/rpm) 10.8/4,000 12.5/4,000 

사진들

             토리노 모터쇼에 참가한 포니







             인테리어 소개

             멋진계기판과 실내, 갖고싶다;....















































참조 : 구글,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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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막의 여우 롬멜 2010.10.17 1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동차에 관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써주셨으면 좋겠는데...

대우 맵시나는 망한 모델인 제미니를 성공적으로 재생시킨 한국형 월드카였다.

 맵시나 광고 (1984년)

주저리주저리 막 썼어도 잘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댓글도 많이좀 달아주세요ㅠㅠ... (기왕이면 광고클릭도;;)


이시기에 나온 대부분의 대우차는 오펠에서 베이스를 가져와 엔진크기를 줄여서 조립한 차이다. 엔진크기를 줄인 이유는 우리나라 세제에 맞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로얄프린스에 1500cc엔진이 달린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뭐 스텔라도 그런데 세삼스럽게 놀라긴..;;;)
맵시나는 맵시의 후속이라는 뜻이다. 즉 가나다순을 생각하면 된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맵시나 이야기를 해보자.

맵시나는 74년 데뷔한 3세대 오펠 카데트가 아버지다. 오펠 카데트는 GM이 처음 월드카로 만든 차였다.(르망도 월드카였다).
월드카란 하나의 차종으로 세계 여러 곳에 공통되게 팔리는 모델을 말한다. 플랫폼은 물론 바디도 공유하고, 부품을 공동구매하여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이 월드카의 최대 목적이다. 즉 여러나라의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아나라 본사에서 하나의 모델을 개발하면 여러나라에서 그 베이스모델을 가져다 조립해 독자 브렌드를 붙어서 파는 것이다.

월드카의 대표적인 모델인 오펠 카데트의 해치백 스타일은 미국에서 시보레 쉐벳으로 만들어지고, 일본에서는 노치백 스타일의 이스즈 제미니로 나왔다. 현대 포니에 맞설 차가 필요했던 새한자동차(후에 대우자동차로 바뀜)는 77년 이스즈 제미니 모델을 들여와 판매를 개시했다. 당시 첨단 감각의 포니에 맞설 차로 1400cc 독일차의 피가 흐르는 제미니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듯했다. 그러나 고장이 잦고 연료소모가 커 포니의 독주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엔진은 전 모델 카미나의 것이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전세계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월드카는 전세계인의 불만을 산 싸구려 자동차로 전락한다. 한 곳의 취향에 맞추기 위한 노력은 다른 곳의 불만을 가져왔다. 마치 끝없이 자라는 잡초 같이. 그리고 싸게 구입한 부품을 필요한 지역으로 나르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GM의 1차 월드카 전략은 실패한다.

결국 제미니는 대우의 뛰어난 재탕기술력을 바탕으로 82년 초 맵시로 이름을 바꾸며 프론트 그릴을 슬랜드하게 손질했다. 억지에 가까운 변화가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플라스틱 사출이 흐느적거리는 그릴과 사각 헤드램프의 처리가 엉성했다. 독일에서는 이미 다음 세대 카데트가 나온 뒤였다. 한마디로 구형을 허접한 기술로 조립해 허접한 차로 만든것이다.

그리하여 재탕 맵시는 3탕과정을 밟어 83년 다시 맵시나로 바뀌고, 85년 초에는 4탕 맵시나 하이 디럭스 모델이 나왔다. 근데 재탕 맵시는 맛있게 말아먹었지만 3,4탕인 맵시나는 달랐다. 이 차는 당시 대우의 최고급 차량이었던 로얄 살롱을 축소한 모양으로 작은 차에 최고의 사치를 담았다. 독일과 일본에서는 사라진 모델이 한국에서는 크고 화려한 차로 탈바꿈한것이다. 월드카가 변신해 한국화한 결과가 맵시나이다. 85년 현대는 포니엑셀&프레스토로 미국과 한국에서 짭짤한 돈맛을 보고 있었다.
월드카의 산산조각난 잔해를 모아 만든 차 맵시나 하이 디럭스는 초탕 제미니의 최후의 엑기스였다. 그리고 그 최후의 엑기스는 대우가 80년대 고급승용차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도록 도와준 쓰디쓴 눈물의 엑기스였다.

 맵시나 디럭스는 86년 르망이 나올 때까지 대략 2만 대 정도 만들어졌다. 놀라지 말기를... 후속차량은 르망이다.;;

      *광고&사진 콜렉션*

      전형적인 80년대 광고군요...

                 이제는 거리가 아닌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맵시나의 84마력 V6 XQ엔진은 일상적인 드라이빙에 이상적이다.

                        어디선가 제미니의 냄새가...

                        당시 자동차 산업의 한계는 엔진과 실내 마감도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역시 맵시나도 실내
                       플라스틱마감도를 직접보면 실망을 금치 못한다.

                       왕관마크가 고급승용차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짝반짝 크롬~

                       번호판등이 왜 4개일까요??

                        앗! 휠에는 대우마크네요;;; 왕관 빠싱~

                       사진빨 먹여주기위한 커튼처리...

     죄다 하이디럭스 모델이네요;;;

          요놈도;;

      너마저 하이디럭스;;;

      그나마 옆에 있는 맵시나 원형...
  


      베이스가된 맵시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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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를 비웃지 말아라.


 대우 티코 광고 (1991)

TICO = Tiny + Tight + Convenient + Cozy (해석은;;;;)

티코를 흔히들 대우자동차에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말이다. 티코는 대우조선(지금의 대우조선해양)산하 대우국민차에서 만든 차이다. (뭐 구지 따질필요 없지만;;; 다 대우그룹인데...)
대우조선은 정부의 국민차 계획하에 1989년즈음에 대우조선이 일본 스즈키와 계약을 맺는다.
티코는 스즈키의 유명 경승용차 모델인  알토(Alto)를 베이스로 개발한 개량 버젼이라고 보면 된다.
티코를 몰아본 분들중 몇몇은 속도가 꽤 괜찮게 나온다는 느낌을 받아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이유는 스즈키 알토가 일본 경차규격에 맞추기 위해 600cc에 최적화하여 만들었는데, 티코는 여기에 약간 모자라보이는 직렬 3기통 657cc 엔진을 빼고 직렬 3기통 796cc엔진을 얹었다. 그래서 티코가 경차치고 가볍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파워핸들 땜시 가볍게 몰진 못했다;;; 힘들다..)
여하튼 마침내 티코는 1991년 창원 대우국민차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한다.
출시 당시 국민소득의 가파른 성장으로 거세게 불던 마이카 열풍에 힘입어 인기를 끌었다. 물론 부담없는 가격과 연비가 판매에 한몫 했다. (당시 가격으로 319만원 부터 시작되었다.)
티코로 인해 한국의 경차 시장이 서서히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힘입어 정부의 국민차 보급 추진 계획으로 고속도로 통행비 50% 감면혜택 외 많은 세제 혜택등이 팍팍스즈 주어져서 큰 인기를 끌었다.

티코도 단점을 피할순 없겠죠.. 그럼 단점을 따져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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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제 전설속의 티코이야기를 해보자... (진짜가능한일만 과대포장해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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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속기는 3단 자동과 5단 수동이 있었고 1998년 5단 수동변속기를 바탕으로 개발된 세미오토 변속기가 추가 됬습니다.
티코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저개발국가의 엔트리카로도 인기를 끌어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폴란드의 대우 현지공장에서도 생산되었습니다. (동구권 분들은 대우를 너무사랑하죠.. 특히 씨에로는 동구권에서 벤츠 다음으로 고장 안나는 차로 유명;;)
우리나라에서 생산 및 판매는 2000년에 마지막 모델을 만들고 2001년에 생산이 중단되어서 역사속으로 증발됩니다..

요즘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걸 보면 우리동네에 그많던 티코들이 저 멀리 페루등지로 순간이동 했더군요/// 그래도 버려지지 않고 다른나라에서 사랑받는 모습을 보니 정말 다행입니다..

사진쇼&사양

           초기형인거같군요..

     초기형티코

      95년형 티코

     후반대에 나온 티코 기본형

      동구권수출용

     2000년형 최고급형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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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너무 불행했다. 잘못된 만남이었다. 이차는 기아를 경영악화로 몰고갔다.


엘란광고 (1996년)

(단종을 알리는 당시 조선일보기사 http://www.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9041270312 )

엘란... 정말 운이없는 차중하나이다. 판매대수 1053대.... 어쩌면 이정도만 팔린게 기아입장에선 다행이었을것이다. 왜냐하면 엘란은 많이 팔수록 회사입장에선 적자인 차종이었기 때문이다. 이 차 때문에 기아는 재정악화 상황까지 갔고 결국 회사가 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엘란은 누구?

엘란은 기아자동차가 1996년 7월에 출시한 차이다. 이차는 한국에서 두번째로 출시된 로드스터 차량이다. 영국의 유명 자동차 회사인 로터스사의 기초설계를 바탕으로 기아가 엔진을 변경하고 지상고, 차체, 실내 설계 일부를 수정하여 국산부품비율을 85%까지 높혀 생산하였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인한 기아자동차의 경영 악화와 엘란 자체의 수익성 부족 문제로 인해 1999년말 단종되었다.

엔진&변속기

엘란은 명실공히 국내 최초의 정통 스포츠카 답게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결집된 Hi-SPRINT 1.8 DOHC엔진을 탑재하여, 시동키를 돌리는 순간 강렬하게 뿜어 나오는 배기음에서 고성능을 예감한다. 최고출력 151마력으로 동급의 외제 스포츠카를 능가하는 가공할 파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피드, 0~100km/h까지 도달 시간 7.4초의 가속성능은 차라리 전율에 가까운 드라이빙 쾌감을 느끼게 한다.


엔진은 기아자동차가 독자개발한 배기량 1,793cc의 TSD-DOHC 엔진을 적용하였다. 이엔진은 크레도스에 들어간 엔진을 사용했다. 엔진의 최고출력은 151마력, 최대토크는 19kg·m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220km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까지의 소요시간은 7.4초이다. 앞바퀴 굴림방식에 5단 수동변속기가 적용되었으며, 스포츠카 답게 자동변속기 모델은 생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티어링 휠이 상당히 무겁고 변속기도 조작감이 분명하지 않아 변속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보기전엔 구분하기 힘들다. 정말 운전하기 힘든차지만 잘빠진 몸매를 보면 모든화가 풀릴듯...;;

특이점

정통 스포츠카는 급가속, 고속주행, 고속선회 등 가혹한 운행여건 속에서도 완벽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그 어떤 차보다 강인한 프레임을 갖추어야 한다. 엘란은 물고기 등뼈처럼 차량 전체를 강력하게 지지해주는 초고강성 백본 프레임(Backbone Frame)을 채택하였다. 고속직진시 안정성을 보장하는 정확한 무게중심, 급코너링시에도 비틀리지 않는 횡강성, 충돌시에도 운전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철저한 승객보호능력, 고속 드라이빙시 더욱 극명하게 입증되는 엘란만의 놀라운 안정성과 핸들링 성능 뒤에는 백본 프레임과 같은 세계적 특허기술이 숨어 있다.

엘란의 등장은 최첨단 신소재 자동차 시대의 개막을 의미하기도 한다. 엘란은 일반 스틸바디보다 경량이면서 강성과 내충격성은 월등하고 단위무게당 에너지 흡수율 역시 3배 이상 높은 영국 로터스 특허 공법의 V.M.R.P(VARI Mould Reinforced Plastic)바디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접촉 및 충돌시 탁월한 안정성으로 차체 손상을 극소화함은 물론, 스틸 바디에서는 생각할 수 조차 없었던 부분수리 및 강력한 색상표현까지 가능하다.



다른차에 비해 차체길이가 짧고 차체의 앞쪽보다 뒤쪽이 더 크기 때문에 일반 차를 운전하다가 엘란을 운전하면 감각이 매우 다르다. 땅바닥에 앉아있는 것같은 운전석도 일반승용차와 다른 점.
평범한 승용차만 몰던 사람이라면 매끄럽게 코너를 빠져나가기 힘들다.

다른 스포츠카와 다르게 놀라운 연비!(11.8km/L)

실내

엘란의 실내는 실망스럽다. 슈마나 세피아II 와 함께 쓰는 부품이 많아 단조롭다.
화려한 겉모습을 반감시키는 엘란의 실내는 실망스럽다.

제동

엑셀을 살짝만 밟아도 땅을 박차고 나갈 정도로 가속력이 뛰어난 엘란이지만 브레이크 성능은 기대 이하이다. 다소 밀리는 브레이크 때문에 감점을 줘야 할 것 같다. 어짜피 이제는 엘란을 생산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냥 입닫고 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야확보

엘란은 시야가 좋지않다. 따라서 고개를 쑥 빼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코너링

(엘란사랑님께서 수정을 요구하셔서 수정을 하겠습니다. 2010년 4월 8일)

엘란은 전륜구동(FF)차량중 코너링 성능이 가장 뛰어나기로 평가받았던 차량이다. 그러나 일반차량을 타고다니던 오너라면 엘란의 특이한 코너링은 낮설 수 있다.
다른차에 비해 차체길이가 짧고 차체의 앞쪽보다 뒤쪽이 더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국산승용차를 몰던 사람이라면 엘란의 특이한 코너링은 낮설어진다. 하지만 엘란의 코너링에 익숙해지면 운전하기가 쉬워진다.

종합

엘란이 실패한 이유를 인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 엘란은 공식적으로 전륜구동차량중 코너링이 제일 좋은차답게 스포츠카다운 코너링을 보여준다. (지극히개인적인생각: 스포츠카의 기본에 충실하는 자세는 매우 좋지만 국내소비자들의 운전습관을 조사해서 좀더 세밀하게 만들었으면 낮설지 않은차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2. 변속기가 수동인만큼 변속조작감을 확실히 해야 한다.
  3. 우리나라 도로는 산악지형이 많다. 그리고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운전을 난폭하게 해서 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많다. 브레이크의 제동력이 확실해야 한다. 스포츠카는 빠른속도와 브레이크가 생명! 브레이크를 개선해야 한다.  이부분은 브레이크 업그레이드 행사 이후 개선된 버전으로 주행시 브레이크 성능이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저는 업글전차량을 기준으로 썼었습니다.. 업그레이드모델을 누락한점 죄송드립니다.)
    거기에 약간의 튠업(디스크 사선가공 + 스포츠패드 + dot4 브레이크오일)을 하면 제법 좋다고 합니다. (브레이크문제 해결!!!)
  4. 당시 소비가가 느끼는 2750만원은 엄청난 돈이었을것이다.(IMF시대였으니깐...) 시장조사를 확실히 해서 현지화를 시켰어야 했다. 그래도 기아도 나름대로 가격을 최대한 낮추었다.. 결국 시대를 잘못만난 죄... 
  5. 컨버터블의 존재감은 직접타보면 알 수 있다. 역시 간지난다... 공기 좋은 강원도 쪽에서는 최고다. (그래도 지극히개인적인 생각 : 칼리스타가 처음나왔을때 리뷰어가 뚜껑을 열고 광화문네거리를 잠깐 돌았는데 코가 새까매졌다는 말이 있다. 국내에서 뚜껑열리는 차는 그다지 매력이 없었을둣...)


*2010.06.06 : 엘란사랑, FreeD님의 요구사항대로 글을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란제원

구 분

ELAN

전 장(mm)

3,880

전 폭(mm)

1,730

전 고(mm)

1,270

실 내

장(mm)

960

폭(mm)

1,400

고(mm)

1,060

축 거(mm)

2,250

윤 거

전(mm)

1,485

후(mm)

1,485

오버항

전(mm)

965

후(mm)

665

최저 지상고(mm)

130

공차중량(kg)

1,070

배기량(cc)

1,793

연 비(km/l)

11.8

최고출력(ps/rpm)

151/6,250

최대토크(kg.m/rpm)

19.0/4,500

최고속도(km/h)

220

가속능력(sec)

7.4

TIRE

205/55 R15

등판능력(tanθ)

0.874

회전반경(m)

5.3

제동거리(m)

10.8

브레이크

V. DISC

DISC

현가장치

Interactive D/Wishbone

D/Wishbone




































생산년도: 1996년7월~1999년

사진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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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엘란사랑 2010.04.04 1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너링 성능이 형편없다는 말씀에는 공감할 수 없네요.
    전륜구동(FF)차량중 코너링 성능이 가장 뛰어나기로 평가받았던 차량이 엘란인데요..;;

    • 어쩡이 2010.04.04 2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반세단과 비교해서 쓴글입니다 엘란의 코너링이 공식적으로는 가장좋지만 일반세단을 몰던 오너입장에서 엘란의 코너링은 낮설수도 있겠죠... 제가 너무 세단과 비교하여 쓴것 같습니다.
      이번글의 코너링부분은 수정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정확한 충고 감사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빠른 시일내에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2. FreeD 2010.04.21 18: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폄하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면서
    올려놓으신 내용 중 엘란이 실패한 이유에 관해 제 사견을 적어봅니다.

    1번 : 원래 수익성을 위해 만든 일반인용 차가 아니기에 국내소비자들의 운전습관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은
    적합한 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번 : 다른 차량에 비해 변속조작감이 좋지 않다는 말에는 동감합니다.
    3번 : 브레이크 업그레이드 행사 이후 개선된 버젼으로 주행해보면 브레이크 성능이 나쁘지 않습니다.
    거기에 약간의 튠업(디스크 사선가공 + 스포츠패드 + dot4 브레이크오일)을 하면 제법 좋습니다.
    4번 : 1번 내용에서처럼 매니아용 차라는 점에서 가격의 문제는 생각이 다릅니다.
    어차피 팔수록 손해보는 차였지만 더 이상 낮은 금액으로 공급할 수는 없었을꺼구요.
    5번 : 컨버터블의 존재 이유는 직접 타보아야 알 수 있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 어쩡이 2010.06.05 0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적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제가 그동안 중간고사에 수행까지 몰아치기 하느냐고 이제서야 보게되었네요.. 곧수정하겠습니다!

  3. 2010.05.12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엘란사랑2 2013.02.10 1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엘란 오너입니다.^^
    엘란의 시야확보와 관련해서..
    엘란은 원래 2인승 로드스터 입니다
    로드스터란 태생부터 옆창문과 지붕이 없는 차를 일컫는데요
    세상엔 흔히들 말하는 여러종류의 오픈카가 있지만
    같은 오픈카라도 차량별로 오너가 느끼는 개방감은 다릅니다.
    잠시 말을 돌려서....
    엘란에게 지붕(소프트탑)은 갑작스런 눈이나 폭우를 맞았을때
    차량과 차주를 보호하는 임시의 방편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말은 비오는날 비가 샌다, 바람소리가 들어온다,
    냉, 난방에 약하다, 이런말은 엘란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엘란의 전방시야는 신호대기중 거북목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픈을 하면, 전방에 가려져 있던 시야가 확 트이면서
    비로소 엘란의 진면목이 나오게 되는거죠.
    이것은 오픈카의 기본에 매우 충실한 설계입니다. ^^
    엘란 많이 사랑해주세요.


가히 국민 중형차라 불릴만한 최고의 베스트 셀링카였다. 매우 딸리는 엔진만 빼면 말이지...;;



소개영상 (1983년) (출력이낮습니다.)


현대 스텔라는 1983년부터 1997년(일반승용차는1991년까지 생산됨)까지 현대자동차에서 생산된 후륜구동의 중형승용차입니다. 스텔라는 당시 중형자동차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대우자동차의 로얄시리즈에 맞서기 위하여 탄생하였습니다. 스텔라는 포드 코티나의 샤시를 이용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현대 최초의 고유모델입니다. 디자인은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맡았습니다.
스텔라를 바탕으로 소나타(Y1)가 탄생했습니다(1987년 쏘나타가 풀체인지되면서 스텔라 GXL로 개명되어 1991년까지 팔렸습니다.)
1983년 당시의 국산차는 모두 수동변속기 그것도 4단에 불과했고, 자동변속기 차량은 거의 전무했습니다.(포니오토가거의유일..) 스텔라는 바로 이점을 노려 국산 자동차 최초의 5단변속기차량이라고 자랑하는 광고를 하여 동력성능 면에서 월등함을 강조했습니다.(포니엔진에 5단변속기;;;) 이런 점 때문에 인기를 얻은 스텔라는 입소문을 타고 마침내 엄청난 판매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당시 월 판매량이 2,000여대 였는데 이는 80년대 당시 국산자동차 시장기준으로 보면 매우 큰 숫자였다. 요즈음으로 치면 쏘나타가 매달 10000여대 판매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배우 금보라나 안성기도 스텔라를 뽑았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잘나가던 스텔라에 큰문제가 생기었습니다. 차량 배선 문제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결국 스텔라의 판매는 곤두박질을 치고 맙니다. 그러자, 현대는 스텔라를 1.5엔진으로 단일화해, 판매량을 다시 끌어올리게 됩니다.
1985년에는 5마일 범퍼를 장착하고 모켓시트를 채용한 캐나다 수출용모델인 CXL(Canada eXported Limited)모델을 출시합니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 공식차량(스텔라88)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변속기는 미쯔비시 제품을 썼습니다. 엔진은 1986년까지 포니2에 사용되던, 1.4와 1.6엔진을 썼다.(이래서 스텔라가 힘이 안습이라고 햇었음;;; 크기는 소나타인데 엔진은 포니;;;) 그뒤인 1987년에 2.0이 더해졌다. 이 2.0L엔진이 그 유명한 4G63엔진(일명 시리우스 엔진)이다. 미쯔비시에서도 시리우스엔진을 9세대 란에보가 생산될때까지 달 정도로 내구성이 좋았다고 합니다. 자가용은 1992년에, 택시용은 1997년에 단종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됩니다.

*광고와사진

스텔라 광고 (1983년)(소리출력이약간높습니다.)


스텔라프리마 (1984년) 골든팩이 유명했었죠..

     요놈이 당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오토자동차인 포니오토매틱. 그다지 잘팔리지는 못했다.

                          프리마는 새로워진 그릴과 크롬장식, 그리고 그 유명한 골든팩이 적용되어 화제가 되었던 모델이다.
 
     1400cc엔진을 얹은 스텔라 프리마E, 경제성을 강조했던 모델이다.

     안성기씨도 스텔라를 탔었다.

     5마일범퍼등 캐나다 수출용에만 있던 기능을 달고 나왔던 유명인사 스텔라CXL

 
'카나다 수출형 스텔라 CXL!' 광고 (1985년)

     스텔라중 제일 싼 모델이었던 스텔라GX

     초기 쏘나타(Y1)는 스텔라를 가져다가 옵션만 추가시킨 것이었다.

                                1.8MPi엔진을 얹어서 힘을 향상시켰던 스텔라1.8i

     스텔라 프리마



                                     
                                      영국잡지에도 소개된 스텔라.

                                      다이하쯔,타보트사의 동급차량과 비교


                                          영국 책자.

                                           





                                            so much car you'll hardly believe the price.

                       내부



                       멋진 흑백사진.

                                       영국광고


 
영국광고 (1984년) (여러 잡광고가 셖여있습니다.)

                    

                                 스텔라 CXL

                       택시용 스텔라 1991년)

           스텔라는 원래 로얄왕국과 맞써기위해 탄생하였지만 어쩌다가 패밀리 세단이 되버렸다..

참고자료출처 : 자동차생활, 유투브, 위키백과,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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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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